[산업은행 경영진단] 변함없는 원칙ㆍ소신으로 뚝심 담판…'구조조정 해결사'
2019-07-03 00:05
"기업 자구노력 먼저"…정치권ㆍ총수ㆍ노조에도 흔들림 없어
다양한 M&A방식 도입 새 주인 매입자금 부실기업에 투자
금호타이어ㆍSTX조선해양ㆍ한국GM 등 오래된 난제 해결
다양한 M&A방식 도입 새 주인 매입자금 부실기업에 투자
금호타이어ㆍSTX조선해양ㆍ한국GM 등 오래된 난제 해결
덩치 큰 한계기업 구조조정 작업은 통상 '종합예술'로 불린다. 효율 개선을 위한 조직개편부터 아까워서 내놓지 못하던 자산 매각, 회사의 새 주인을 찾는 일까지 만만히 보기 힘든 난제가 겹겹이 쌓였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은행 회장이 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고 선언하면서도 뒤로는 시간만 보내고 있던 것도 이 같은 구조조정의 속성 탓이 적지 않다.
그러나 2017년 9월 취임 후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가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 한국GM, 대우조선해양, 동부제철 등 그동안 산업은행이 묵혀놨던 난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다. 최근에는 쉽지 않을 것 같던 아시아나항공 매각까지 가시화되면서 이 회장의 구조조정 성과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매각됐다. 특정 제3자에게만 추가로 발행되는 주식을 배정해 경영권을 이전하는 방식이다. 전통적 M&A라면 회사의 몸값이 과거 대주주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끝나 매물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은 없다.
또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서는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음을 연연치 않고 사실상 현대중공업의 입맛에 맞는 공동 지주사 설립 방식으로 거래 구조를 설계했다. 현대중공업이 회사를 나눠 지주사를 만들면 산은이 대우조선 지분을 현물 출자하고, 합작법인이 발행하는 신주를 산은이 받아 주주가 되는 형태다.
당초 대우조선 인수 가격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평가됐지만, 실제 현대중공업이 부담할 현금은 4000억원 규모다. 대신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에 1조5000억원가량을 투자한다. 이 역시 새 주인의 매입자금으로 부실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부담스러운 매물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새 주인들이 결단을 내리는 데 이 회장 특유의 인센티브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이 회장은 과거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연구원 등을 거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경험을 축적한 끝에 이 같은 거래구조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이 구조조정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핵심 원동력으로 원칙주의를 꼽는다. 특히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3대 축인 '총수, 노조, 정치권'에도 원칙주의를 앞세워 대처했기에 구조조정 동력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취임 당시 "구조조정의 원칙은 해당 기업의 자구 노력이므로, 끌려 다니는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고, 이 원칙을 지금까지 이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강경한 노조로 꼽히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의 대화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원칙을 고수했다.
노조 지도부가 여의도 산은 본점 앞에서 집회를 할 때도, 공장 100m가 넘는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할 때도 "구조조정을 위해선 경영진은 물론 노조,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원칙을 강조하며, 해외매각과 구조조정을 관철시켰다.
특유의 소신과 뚝심은 재벌 총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타이어 매각에서 상표권과 우선매수권을 이유로, 채권단이 결정한 중국 더블스타로의 매각을 막았다. 이동걸 회장이 취임 2주 만인 2017년 9월 25일 박 회장을 만나, 두 가지를 포기시켰다. 올 4월에는 박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포기를 담판 지었다.
물론 이 회장 특유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매각 기업 대부분에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기업에 투입된 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매각 이후 해당 기업이 계속 어려움을 겪는다면 산은의 부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회장은 "구조조정의 목적은 산은의 자금 회수가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패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길게는 10~20년 후 기업 가치에 달렸다는 것이 이 회장의 변치 않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