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스페셜칼럼] 오사카 G20 이후 화웨이 운명은?
2019-06-30 10:03
우리나라가 미국의 요구를 즉각 수용할 필요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오사카 정상회담 합의로 그동안 중단되었던 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다. 미국은 추가 관세 부과를 보류하고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의 구매를 약속함으로써, 무역전쟁이 더 격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인 화웨이 제재에 대해서는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중국은 화웨이에 대한 미국 기업 수출 금지의 전면적 해제를 요구하였지만, 미국은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의 배석과 유화파인 래리 커들로 국가경제위원장의 불참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공세적인 입장을 포기할 의지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7년 세계금융위기를 전후로 향후 첨단기술 경쟁의 핵심산업인 인공지능(AI), 5세대 통신(5G),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등에서 미·중 사이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었다는 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 위기감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을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에서 몰아내지 않는 한 미국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무역전쟁의 목표가 무역적자 해소가 아니라 '글로벌 가치사슬을 중국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재편'으로 확대된 것이다.
최근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의 사용을 금지하라는 미국의 압력은 중국산 제품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통신장비 사용을 제한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이틀 뒤 상무부는 미국 정부 승인 없이 미국 기업으로부터 부품 거래를 금지하는 거래제한 기업명단 목록에 중국에 있는 화웨이 본사와 세계 각지에 있는 68개 자회사를 포함시켰다. 6월 18일 그 목록에 중국의 슈퍼컴퓨터 산업의 핵심에 있는 4개 기업과 한 연구소가 추가되었다. 이 조치가 발표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경쟁사인 에릭슨과 노키아가 중국에서 생산한 모든 통신장비까지 배제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보면,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최종 타깃이 아니라 시범 케이스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화웨이 제재가 잘 이행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막대한 설비 투자비용 때문에 대형 통신사가 진출하지 않은 중서부 농업 지역에서는 중소형 통신사가 가성비가 좋은 화웨이 장비를 많이 설치해 놓았다. 이 때문에 백악관 관리예산국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의회 지도부에게 6월 4일 보낸 서한을 통해 연방 보조금을 받고 있는 농업 지역에서 화웨이 장비를 당장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연방 정부 예산으로 중국산 제품의 구매를 제한하는‘2020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의 유예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여줄 것을 요청하였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해체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는 미국 기업들도 화웨이 제재에 적극적인 동참을 꺼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가치사슬의 정점에 있는 애플이다. ‘애플이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된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는 아이폰 뒷면의 문구처럼, 애플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개발과 디자인에 집중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 생산을 폭스콘에 위탁했다. 덕분에 2018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3위(약 11%)로 전락했지만 영역이익 점유율은 압도적인 1위(78%)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생산라인의 최대 30%를 중국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애플은 미국에서 제조했던 유일한 제품인 맥프로의 신형 모델을 향후 중국에서 조립하기로 결정했다. 화웨이와 거래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리는 구글, 인텔, 퀄컴, 마이크론 역시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반발과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전면적 제재를 부활시키는 동시에 동맹국에게 동참을 다시 압박할 것이다.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미국은 정보 공유를 제한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6월 15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국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한·미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강력한 압박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가 미국의 요구를 즉각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게 합의 결과 이행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국무원 행정법규가 아니라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입법 조치를 요구해왔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미국은 정권 교체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대통령 행정명령이나 상무부 규정보다는 더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제정하고 미국 기업이 이 법을 솔선수범해서 준수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나라는 제재에 참여할 수 있는 명확한 명분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먼저 나서서 매를 맞을 이유는 없다. 미국 기업도 준수하지 않는 제재를 우리 기업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선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