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르포]일본·싱가포르에서 한국형 도시재생의 길을 묻다

2019-06-28 13:05
MXD 방식 개발 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권리자와의 합의 형성이 핵심
정부 주도 토지이용 극대화한 싱가포르…상당한 디테일 요구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 힐스 5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쿄 일대 야경. 정면에 도쿄 타워가 보인다. [사진=김충범 기자]

문재인 정부가 핵심 국책사업으로 지정한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시아 주변 선진국들의 도시재생 성공 사례도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사회·경제적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쇠락한 지역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만한 기능을 도입해 도시 전체를 재생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도시재생이 워낙 초기 단계에 놓여있다 보니 적절한 성공 사례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때문에 한국형 도시재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기적 측면에서 주민과 지역이 지속적으로 호흡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되, 주변 선진국의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해 우리 실정에 맞게 다시 가공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아주경제는 이와 같은 한국 도시재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국내 대표 도시인 서울과 유사성이 높으면서도 가까이에 위치한 아시아의 일본 도쿄 및 싱가포르 사례를 살펴보고 일대에 벤치마킹할만한 요소는 없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실제로 도쿄를 시(市)·정(町)·촌(村)을 제외한 23개 특별구로 한정한다면, 도쿄는 도시 규모 측면에서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과 유사한 점이 많다. 도쿄 23개구 면적은 626.7㎢, 서울은 605㎢이며, 인구 역시 920만명, 1000만명 수준으로 비슷하다.

아울러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 692㎢, 인구 556만명의 작은 도시국가다. 인구는 서울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서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 세계 도시재생의 대표 성공사례…일본 도쿄 '롯폰기 힐스'

일본 수도 도쿄 미나토구 6초메에 위치하는 '롯폰기 힐스(六本木, Roppongi Hills)'는 세계 도시재생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도쿄는 서울에 앞서 도시화 및 쇠퇴화를 먼저 경험한 바 있다. 미나토구 롯폰기 힐스 일대는 이 같은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지역으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도시재생에 참고가 될 만한 사례가 많다.

일대는 지하철 히비야선과 오에도선 환승역인 롯폰기역이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할 만큼 교통 여건도 우수하다. 또 인근에 '도쿄 타워'와 같은 랜드마크를 비롯, '후지 필름', '코나미', '아사히 TV' 등 일본 유명 기업들과 방송국 및 다양한 오피스 빌딩이 몰려 있다.

롯폰기 힐스의 핵심은 '모리 타워(Mori Tower)'라 할 수 있다. 지상 54층, 238m 높이로 조성된 모리타워는 주택, 호텔, 업무시설, 상업시설, 문화시설, 방송국, 미술관, 공원 등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한 곳에 집약된 '복합개발단지(MXD: Mixed Use Development)'다.

무엇보다 롯폰기 힐스는 구역 전체의 동선이 매우 체계적으로 짜여있다. 다양한 기능이 혼재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저층부에 상업시설, 중층부에 오피스, 상층부에 전망대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만 롯폰기 힐스의 재생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실제로 일대를 아주 조금만 벗어나면 랜드마크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불량 목조주택 밀집지역을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모리빌딩 본사 관계자는 "롯폰기 힐스는 계획 면적이 약 11헥타르(11만㎡) 정도였다"라며 "구역 내 15m에 달하는 높낮이 차이가 있고 도로도 구불구불하게 급경사로 이뤄져 눈이 오면 통행이 금지될 정도로 주거 환경 여건이 열악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대 구역 남측으로는 저층 목조주택이 많았고, 주택지 내로 연결되는 도로는 차는 물론 사람도 겨우 스쳐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며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울 만큼 롯폰기는 방재 상 과제도 만만찮은 지역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모리빌딩 측이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핵심은 권리자와의 합의 형성이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지난 1986년 시작된 롯폰기 힐스 사업은 17년이 흘러 2003년에야 결실을 맺었다"라며 "사업 기간 내내 행정 관계자와 협의에도 많은 난항을 겪었다. 또 개발 반대 세력들과의 끈질긴 협의도 이어나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권리자와의 합의 형성이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롯폰기 힐스는 일본의 '도시 재개발 법(Urban Development Law)'이라는 법률에 근거, 모리 빌딩이 약 400명에 달하는 소유주들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도쿄를 넘어 세계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자리 잡은 모리빌딩은 지난해 4월 개업 15주년을 맞이했다.

모리빌딩 본사 관계자는 "롯폰기 힐스는 800개에 달하는 레지던스, 200여개의 점포를 비롯해 호텔, 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끊임없는 고용 창출이 이뤄지고 있다"며 롯폰기 힐스가 도시재생의 또 다른 의의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관계자는 "롯폰기 힐스의 성공 사례는 도시재생 본연의 지역 활성화 차원을 넘어, 세계의 사람, 물품, 돈, 정보를 유인하는 등 도쿄 도시 전체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공헌했다"고 강조했다.
 

야간에 바라본 마리나베이샌즈의 전경. 싱가포르 국민들과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크루즈를 타고 수변 건축물을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사진=윤지은 기자]

◆ 정부 산하 기관 주도로 토지사용 극대화한 싱가포르…'마리나베이샌즈'도 눈길

싱가포르 도시재생을 이해하려면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도시국가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전체 국토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더 넓은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토지면적상 제약을 고려할 때 정부가 주도해 토지사용을 가능한 최적화할 필요가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10년 주기 콘셉트플랜, 5년 주기 마스터플랜 등 도시계획을 세워 국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지난 1971년 최초 수립된 콘셉트플랜은 현재 싱가포르 도시 구조를 정의한 최초의 전략적 장기 토지 이용계획이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싱가포르 정부 산하 도시재개발청(URA)이다. 우리나라의 국토교통부격이라고 볼 수 있지만, URA는 도시계획 분야만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가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지역은 중심사업지구(CBD) 등 시내다. 일대는 스카이라인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 간격마저도 치밀하게 계획된 느낌을 준다.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건축물은 '마리나베이샌즈'다. 상단부가 유람선과 나무 등으로 장식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쌍용건설이 시공한 호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싱가포르인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는 프리미엄 쇼핑몰, 카지노, 컨벤션 등이 있다.

싱가포르는 국토의 80% 이상이 국유지다. 건국 초기 정부가 토지를 대거 강제수용한 탓이다. 때문에 건물을 새로 올리고자 하는 디벨로퍼는 정부로부터 30~60년 장기 리스(Lease)를 받아야 한다. 싱가포르 공공주택 임대기간이 99년임을 감안하면 리스 기간은 길지 않은 편이다.

이관옥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도시계획과 교수는 "URA는 공사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하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긴다. 마리나베이샌즈나 CBD에 짓는 오피스 같은 경우 특히 그렇다"며 "예컨대 오피스 옆에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나무가 심어져 있어야 한다는 식의 계획 상 상당한 디테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는 화이트 사이트(White Site)라는 토지 범주가 있다. 이 지역은 용적률 같은 토지이용 규제가 전혀 없다. 시장 요구가 급변하는 만큼 토지이용 규제로 지역을 묶어두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게 URA의 판단이다. 화이트 사이트는 싱가포르 국토 10% 미만을 차지하며 주로 CBD 등 프라임 지역에 분포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향후 프라임 지역을 중심으로 화이트존을 더욱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톱다운(Top-Down) 방식을 고수하던 싱가포르 정부도 최근 들어선 바텀업(Bottom-Up)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URA는 올해 갱신되는 마스터플랜의 가안(Draft Plan)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URA시티갤러리 등 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URA 관계자는 "국민들을 초기 도시계획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주민들의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도와 지역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일 수 있다"며 "이는 URA가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에코프랜들리도 빼놓을 수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마리나베이샌즈뿐 아니라 오피스 등 다양한 건축물 곳곳에 나무가 조성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타닉가든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산뿐 아니라 가든스바이더베이 같은 인공적 녹색지대도 시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URA 관계자는 "자연유산을 보호하고 자연생태계의 복원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 덕택에 우리는 4개의 자연보호구역, 20개의 자연지역, 그리고 자연공원 등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기금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