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 필요” 서울시향 향한 애정 묻어난 벤스케 감독의 첫 행보

2019-06-24 17:05
쿠바·남아프리카공화국 투어 통해 '음악의 외교적 힘' 확인

[사진=서울시향 제공]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으면 20년 이상 함께 할 만큼 단원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그가 마침내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들고 첫 공식 행보에 나섰다. 새 인연에 대한 거장의 애정은 한 여름의 햇살만큼 뜨거웠다.

벤스케 서울시향 신임음악감독은 24일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같은날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임명장을 받은 벤스케 음악감독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벤스케 감독의 임기는 2020년 1월부터 3년간이다.

왜 서울시향을 선택했을까? 서울시향의 잠재력과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그를 끌어당겼다. 벤스케 감독은 “서울시향은 한계가 없다.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유명한 오케스트라와도 함께 해봤다. 가끔씩 지쳐있는 모습을 보였고, ‘지루하다’는 반응을 하는 단체도 있다. 새로운 시도나 다른 접근을 하려고 할 때 본인들이 기존해 해왔던 것을 고집한다”며 “서울시향과 함께 했을 때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 언제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챔버뮤직 앙상블을 지향한다”고 비교했다.

벤스케는 2015년, 2017년, 2018년, 2019년 등 총 4회에 걸쳐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하여 단원, 관객,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5년 12월 사임한 정명훈 전 음악감독에 이어 제2대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벤스케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2003년~2022년), 핀란드 라티 심포니 명예지휘자(2008년부터) 등으로 활동 중이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는 라티 심포니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미네소타, 라티 심포니를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글로벌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견인한 벤스케는 ‘오케스트라 빌더(ORCHESTRA BUILDER)’ 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갖고 있다.

굵직굵직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벤스케 음악감독은 기자회견 내내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향이 발전하기 위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콘서트홀이다. 벤스케 음악감독은 “오전에 박원순 서울시장님을 만나 ‘리허설 장소와 공연 장소가 일치되는 것이 좋은 연주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럽, 미국에서도 공연 장소에서 연습을 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서울시향에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고 관련 질문에 답했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강은경 서울시향 신임대표는 “콘서트홀이 만들어지면 서울시민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들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다.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두 번째로 벤스케 감독은 음반 작업을 꼽았다. 벤스케 감독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재임 기간 동안 시벨리우스와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BIS 레이블과 녹음했다. 그중 시벨리우스 1번, 4번 교향곡 음반으로 독일 음반 평론가 협회상(2013)과 그래미상 ‘교향악 부문 최고상’(2014)을 수상했다. 2017년부터 10개의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에 착수했으며 이 중 5번 음반은 지난해 그래미상 후보로 지목됐다. 이는 서울시향에서도 계속된다. 벤스케 감독은 “음반 작업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축제(페스티벌) 참가를 꼽았다. 그는 “음반을 통해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고 훌륭한 결과를 낸다면 서울시향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며”며 “국제적인 명성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 클래식을 듣기 힘든 곳에 찾아가 관객들과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도 예고했다. 유명한 곡들뿐만 아니라 향후 유명해질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찾아 연주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힘’을 경험한 벤스케 감독은 앞으로를 기대하게 했다.

벤스케 감독은 2015년 쿠바에서 투어를 했는데 이는 1961년 외교 단절 이후 최초의 미국 오케스트라 투어였다. 2018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에 참가했다.

벤스케 감독은 “쿠바에서 공연할 때 처음에는 양국 국가를 연주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설득해 연주하게 됐다. 쿠바 국가를 연주할 때 청중들이 그것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이 유럽과 미국 방송에 중계됐다”며 “당시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음악을 통한 외교를 경험했다. 분단된 한국에서도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은경 대표는 “벤스케 감독님이 쿠바 투어, 남아프리카공화국 투어를 했을 때 구성원들이 찍은 사진을 봤다. 외적으로는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얼굴 표정은 환하게 빛났다”며 “벤스케 감독님은 현재 한국의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음악의 외교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다”고 귀띔했다.

첫 공식 행보를 시작한 벤스케 음악감독과 함께하는 서울시향이 더욱 궁금해졌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통해 각광받은 ‘미네소타 모델’은 ‘서울시향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을까? 벤스케 음악감독의 취임연주는 2020년 2월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