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칼럼] 장·단기금리 역전 .. 경기하락세 인정하고 부양책 시행하라
2019-06-20 08:34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이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하면서 기준금리는 사실상 제로가 되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은행이 여유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면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수수료를 징수하는 극단적 정책을 도입했었다.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지 말고 대출로 운용하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일부 은행들은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했고 결국 돈을 묻어두기 위해 장기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채권물량은 부족해졌다. 결국 묻지마 투자까지 나타났다. 채권에서 챙길 돈보다 더 많은 웃돈을 주고 채권을 매입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중앙은행에 예치하여 수수료를 내느니 채권을 웃돈 주고 사서 묻어놓겠다는 것이었다. 채권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미래 불확실성을 얼마나 키웠는지 그 여파와 위력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비싼 돈을 주고라도 장기채에 돈을 묻어두겠다는 투자자가 많으면 채권가격은 오르고 장기금리는 하락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요가 많아질수록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대출이나 회사채처럼 신용위험이 있는 대상을 제쳐두고 무위험채권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채권시장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이러한 장·단기금리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경기둔화의 주요한 지표로 평가된다. 2001년 이후를 보면 이 현상이 나타나고 7개월쯤 지나서부터 경기가 하락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피해간 우리경제에서 최근 이런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초단기 금리인 한은기준금리가 1.75% 수준인데 장기국채금리가 1.5%대를 기록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보면 2017년 중반부터 경기가 확연한 내림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상당부분 확인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미국과는 달리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경기하락 이후에 발생하면서 경기하락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장도 2017년 중반이 경기 정점을 찍은 시점으로 판단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는 점을 보면, 경기하락이 상당부분 이미 확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기 정점을 공식화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통계위원회 산하 경제통계분과위원회는 정점 설정을 보류하기로 발표했다. 경기 정점 설정 소요시간이 과거에 비해 짧은 점,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대비 국내총생산(GDP) 순환변동치의 변동이 미미한 점 등에 대해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제11 순환기의 시작인 2013년 3월 저점은 3년이 지난 2016년 3월에 공식화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점을 공식화할 때는 경기가 저점을 찍고 상승하는 국면이다. 상황이 좋고 여유가 있다. 그러나 정점을 공식화하는 것은 다르다. 경기 하락을 확인하는 시점에서 이미 경제는 힘들어지고 있다. 정점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공식화하고 경기하락세를 인정하고 경기부양책을 시행해야만 국민들이 덜 힘들어진다.
그런데 현재 경기 정점으로 논의되는 2017년 중반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시점이다. 정권 출발 시점에 경기가 정점이었다는 것은 출범과 동시에 경기부양책부터 시행했어야 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출범 이후 발표된 정책들은 이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부동산가격 안정정책,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경기억제책이거나 억제책에 가까운 정책들이 이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정부가 경기 하락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경기하락을 부추긴 셈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데 이러한 점이 확인될까봐 경기 정점 공식화를 미루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다. 인정할 것은 빨리 인정하고 솔직하게 국민과 소통을 하는 것이 나은 것 아닌가. 민생에는 금이 가는데 이미지와 명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이 더해지는 요즈음이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