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칼럼] 중국 특별행정구 홍콩을 오가며 바라본 일국양제

2019-06-13 16:07

홍콩 '송환법' 심의 연기 (홍콩 AP/애플 데일리=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의 시위대가 12일 의회인 입법회 밖 도로를 메우고 있다. 홍콩 정부는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이날 2차 법안 심의를 강행할 계획이었지만 시위가 격화할 양상을 보이자 일단 심의를 연기하기로 했다. 


아시아 금융과 물류의 허브인 ‘홍콩(Hong Kong, 香港)’의 현재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 SAR)이다. Hong Kong이라는 표현은 향항(香港)의 광동어(Cantonese)식 발음이다. 구룡반도(九龍半島)와 홍콩섬(香港島)을 비롯한 대략 256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의 또 다른 특별행정구인 마카오(澳門)와는 주강(珠江, Pear River) 하구로 마주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1,104㎢(서울의 1.82배)로 전체 인구 720만이 1㎢에 6700명 정도가 거주하여 인구 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광동(廣東, Canton) 남단의 어촌 마을이던 홍콩은 1840~1842년 영국과 청나라의 제 1차 아편전쟁 이후 1842년 체결된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영국에 할양되었다. 영국은 1856~1860년에 제2차 아편전쟁으로 제1차 베이징조약(北京條約)을 통해 홍콩 섬 북쪽의 구룡반도(九龍半島)도 할양받았다. 그리고 1898년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신계(新界, New Territories)와 중국 본토 근해의 235개 섬을 포함해 99년간 조차받는 계약을 체결, 홍콩은 아시아 최대의 교역지로 성장을 거듭했다. 1941년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함과 동시에 홍콩도 기습 공격하여 4년 간 점령하기도 했다. 현재도 홍콩의 유명한 페닌슐라 호텔(The Peninsula Hong Kong)은  당시 일본 군부의 지휘본부가 있던 곳으로, 홍콩에는 일본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홍콩은 1945년 다시 영국에게 돌아왔다. 영국, 중국 모두 승전국이었지만 영국은 협상에서 중국 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1949년 중국 대륙에 공산당에 공산당 정부가 수립되자, 많은 중국 자본가들이 홍콩으로 건너오면서 홍콩 경제는 발전의 계기를 맞이하였는데, 이는 ‘아시아의 파리’ 상하이의 몰락이 홍콩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966~1976년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 지식인들을 포함한 많은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하여 홍콩의 교육, 문화, 산업의 발전에 힘을 보탰다. 또한, 홍콩은 197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전자, 금융, 무역, 관광 등 분야에서 발전이 확대되었고,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시행되면서 홍콩과 연결된 심천(深圳), 동관(東莞), 산두(산토우,汕頭), 혜주(惠州), 주해(주하이,珠海) 등은 홍콩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 화교들의 투자지역으로 발전되어 갔다. ‘죽의 장막’으로 불리던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대외 문호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홍콩은 중국의 해외로 나가는 출구가 되고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홍콩 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대부분 도시가 개방된 상태에서 홍콩은 과거에 비해 중국으로부터 누릴 수 있는 물리적 기회는 한계에 봉착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집권시기인 1982년 영국과 중국은 1997년에 다가올 신계지역 조차만료에 관한 협상을 시작한다. 이후 여러 해에 걸친 협상 끝에 1997년 7월 1일 홍콩, 주롱반도, 신계 부속 도서를 포함한 모든 지역을 영국이 중국에 반환하는 동시에 중국 중앙 정부 직속으로 홍콩특별행정구가 설립되면서 영국의 155년간 걸친 영국의 홍콩 식민통치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1997년 7월 1일부터 홍콩은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통치를 받는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 사회는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비록 일국양제가 실행되고 있지만 과거 중국 국내 정치를 피해 나온 사람들과 홍콩에서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홍콩에서 영국 식민주의 법과 교육을 통해 홍콩 특유의 생활에 익숙해진 홍콩 사람들이 바로 중국적 환경을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으로 홍콩은 상대 빈곤감도 느끼게 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민해 보면 홍콩의 입장으로 중국을 보는 것과 중국적 입장에서 홍콩을 보는 것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홍콩이 중국의 특별행정구라는 사실이 현실화되고 있다. 시민들의 가치관을 기본으로 보더라도 영국 식민지이자 국제상업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가치관과 중국 공민(公民)의 일부인 특별행정구의 주민의 가치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1997년 이전에 홍콩에 5년간 거주하며 홍콩사를 연구하던 본인이 다시 2010년부터 1년 간 홍콩에서 교편을 잡던 시기와 올해 다시 중국의 심천에서 방문 연구를 하며 바라보는 중국과 홍콩은 이제 ‘홍콩에서 중국’이라는 말이 ‘중국에서 홍콩’이라는 흐름에 동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비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홍콩 시민을 동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특구정책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홍콩 주민은 중국 전체 공민들에서도 특권을 갖고 있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우산혁명’이라는 표현은 전자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중앙의 영향력이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홍콩을 오가며 분단된 한반도 문제 등 국내외 정치 상황에 대해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