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국회는 성역(聖域)이 아니다
2019-06-13 11:26
국회의원은 밉든 곱든 우리가 선출한 공직자다. 나를 대신해 국가를 운영해달라고 맡겼다.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고, 정부를 견제‧비판하는 일이다. 대의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국회는 효율적인 제도다. 그런데 국회가 갈 길을 잃었다. 소모적인 정쟁에 골몰한 나머지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따가운 눈총도 개의치 않는다. 정치는 실종됐고, 국회(國會)가 아니라 국해(國害)라는 조롱이 나온다. 국회 무용론을 넘어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까지 거론되는 지경이다. 정치혐오와 정치 불신은 국회로부터 발원됐다.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는커녕 국민에게 짐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분노를 뒤로한 채 오불관언이다.
올 들어 본회의가 열린 날은 단 3일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일, 2017년 16일과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상습적인 태업으로 법안 처리율은 밑바닥이다. 20대 국회 법안 처리율은 28%에 불과하다. 일하지 않았다고 비판 받았던 19대 국회도 47%였다. 반 토막이다. 4월 5일을 마지막으로 본회의장 문은 두 달 넘게 닫혀 있다. 대신 얄팍한 성명전만 오간다. 소통과 협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막말에다 망언, 고소‧고발만 춤추고 있다. 여당으로서 민주당에게 넉넉한 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 1야당이라는 한국당은 수개월째 밖으로 겉 돌고 있다. 정치가 아니라 싸움판이다. 서로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지만 국민들 보기에는 똑같다.
공천 룰 역시 자신들에게 맞췄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 현직 단체장이 출마할 경우 25%를 감점한다. 이 때문에 현직 단체장들은 출마를 망설인다. 웬만해서는 25% 감점이라는 벽을 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애초 30%에서 25%로 줄였다. 민주당뿐만 아니다. 한국당도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의원에게만 유리한 룰은 현직 단체장을 꽁꽁 묶어 놓는 장치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권을 행사한다. 지방 정치인들을 줄 세운다. 지역에서 정치하려면 소신보다는 국회의원 수족 노릇하는 게 빠르다. 지방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국민소환제도 자신들만 예외다. 복기왕 청와대 정무 비서관이 12일 국민청원에 답하면서 형평성을 거론한 이유다. “대통령도, 지방 자치단체장도, 지방의원도 탄핵과 소환을 통해 파면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만 제외돼 있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헌법은 탄핵을 통해 현직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은 이 때문에 가능했다. 지방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도 마찬가지다. 2007년 7월부터 시행 중인 주민소환제도에 근거한다. 지금까지 주민소환은 2건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러나 선출직 공무원 가운데 유독 국회의원만 탄핵과 소환에서 자유롭다.
국민소환은 영어로 ‘리콜(recall)’이다. 제품에 결함이 있으면 리콜 제도를 통해 보상한다. 그렇다면 의무를 게을리 하는 국회의원 리콜도 가능해야하지 않을까. 올해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된 세비는 250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일하지 않는 국회가 세금만 축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서도 국회는 예외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다. 자신들만 예외로 만든 성역을 하나씩 허무는 게 일하는 국회로 가는 길은 아닌지. 답답한 날들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