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면피' 정부, 여당 지지율 하락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2019-06-10 05:00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연방의사당 입구에는 짙은 회색 빛깔의 작은 비석 96개가 가지런하게 비스듬히 서 있다. 모두 나치에 살해당한 당시 제국의원들을 추모하는 비석이다. 비석 하나하나에는 의원의 이름과 소속정당이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다. 흡수통일에서 오는 자신감과 함께 철저한 나치 청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포용이라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의 부대를 광복군의 일부로, 나아가 국군의 뿌리의 일부로 언급하자 보수층이 발끈하고 나섰다. 4년 전 의열단의 투쟁을 그린 영화 ‘암살’을 관람하고 만세삼창을 했던 야당 국회의원은 만세삼창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민족이익보다 계급이익을 우선하는 보수의 본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급기야 ‘토착왜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것은 강제징용 재판이 “개망신되지 않도록 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양승태 대법원과 재판거래하던 적폐와 맥을 같이한다. 일본을 방문해서는 정부의 대일본 외교를 비난하던 제1야당은 급기야 대표가 나서서 “군은 정부, 국방부의 입장과도 달라야 한다”고 군을 선동하면서 ‘색깔론’으로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 한·미 정상의 통화내용 유출 사건도 ‘국민의 알 권리’나 국회의원의 ‘정당한 의정활동’이라 강변하지만 실상은 트럼프에게 방한을 ‘구걸했다’면서 대통령에 망신을 주려는 시도이다. “달창”, “김정은 수석대변인” 등 막말 시리즈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격이 추락해도 집권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대형유치원 160여곳이 해당 규칙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행정소송에 나서면서 학부모의 걱정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 여당 의원이 지난 5월 국공립유치원에 민간위탁 운영을 도입하는 ‘유아교육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여 유아교육의 공공성이 훼손될 위험이 높아지자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우선시하는 듯이 (잠재적) 피해자의 주의의무를 강조하면서 공익을 방기하는 적폐도 계속되고 있다.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임세원 교수가 사망했을 때 정부가 가장 먼저 내놓은 대책은 조현병 환자 관리대책이 아니라 병원 내 도피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세먼지 문제로 온 국민이 불안해했을 때 정부가 내놓은 첫째 대책은 미세먼지 저감대책이 아니라 마스크 착용이었다. 횡단보도를 둘로 나누어 보행자에게 우측통행을 강제하는 주의의무 강화는 ‘약자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를 방기하는 처사이다. 폭행현장에 개입하는 경찰은 번번이 가해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비난을 받아도 ‘과잉진압’이라는 비난이 두려워 피해자 보호라는 공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모두 ‘책임의 외부화’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국익도 팽개치는 언행이 정당화되고 정부는 권한만 가지고 공익 수호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