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이 '충돌'? 文 현충일 추념사 논란

2019-06-07 11:15

[사진=연합뉴스]


# 현충일에 불거진 '김원봉 논란', 왜?

[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 6일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면서, "저는 보수든 진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이 말의 의미는, 보수가 독점하다시피 해온 '애국'을 이념과 세대를 초월한 공동체의 보편가치로 재정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대통령은 광복군에 참여한 김원봉을 거론하며,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보수신문은 "6.25 영령 앞에서 북한 개국공신이자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띄우느냐"고 힐난하고 있다.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역사의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충일의 개념'에 대한 이견도 숨어있다. 현충일은 6.25 영령을 기리는 날로 출발했지만, 이미 그 추모대상은 일제치하 독립운동가로 확장되어 있다. 문대통령이 거론한 '애국'은 '전쟁의 호국'과 '독립운동의 순국'이 모두 존경받을 만한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물론 그 말은 지금까지 현충일의 핵심 추모대상으로 여겨져온 '호국영령' 못지 않게, 그 범위가 확장된 '순국선열'의 역사적 자리매김을 강조한 것이다.

# 좌파 '순국선열'의 거론은 6.25 호국영령에 대한 모독?

이에 보수언론이 반격을 한 대목은, 해방후 북한에서 활동한 인사를 현충일에 거명한 것은, 호국영령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가치와 명예에 대한 충돌인 셈인데, 이는 2019년 한국의 이념적 지형과 현충일의 '국가정체성 가치'의 현재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참에 현충일과, 호국영령 그리고 순국선열이란 낱말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현충'이란 말의 의미와 역사

현충일의 원래 이름은 현충기념일이었다. 현충이란 말이 익숙해진 것은 충남 아산의 현충사 덕분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이 사당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전사한 뒤 약 100년 뒤(1706년) 유생들이 조정에 건의해 이순신 생가에 세워진 건물이다. 현충사 현판은 숙종 임금이 직접 썼다.

현충사는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폐원 되었다가 일제 때 전국 각지의 성금으로 1932년에 다시 세워진다. 박정희는 '군부쿠데타 정부'의 역사적 명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1966년 현충사를 대대적으로 확장한다. '현충'은 주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수호한 군인정신을 함의한 표현으로 강조된다.

평북 의주에도 현충사가 있었다. 고려 때 의주 백마산성을 쌓은 강감찬과 이것을 다시 보강한 조선 임경업장군을 기려, 숙종 때 사당이 만들어졌다. 1789년 정조임금은 이 사당에 '현충'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이 현충사에는 강감찬을 포함해, 병자호란 때 순국한 군인들을 배향했다.

# '현충'이란 말에는 '죽음'이 숨어있다

현충일의 '현(顯)'은 무슨 뜻일까. '나타나다' '두드러지다' '지체나 명성이 높다'의 의미로 쓰인 말이지만, 이 말에는 '죽음'이 암시되어 있다. 지방문을 쓸 때 현고학생부군의 현고(顯考)에 쓰는 그 말이기 때문이다. 이때 현(顯)은 '돌아간 부모 혹은 조상'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를 합치면, 현충(顯忠)은 '역사적으로 두드러진 충성의 공적'을 말하기도 하고, '돌아가신 충심의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현충일은 1956년 대통령령으로 6월6일로 정해졌다. 이 날짜로 정해진 것은, 의미가 명쾌하지 않다. 고려 때 조정에서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의 뼈를 고향의 집에 보내줘 제사를 지내도록 한 날이 6월6일이었기에 이 날을 택했다는 말도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그해 6월6일은 모내기가 시작된다는 망종(芒種)이었는데, 손없고 길한 날이라 이날을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6월6일은 양력인지라, 이런 설명도 설득력이 별로 없다. 한국전쟁이 시작됐던 6월을 기리며 '너무 덥지 않은 좋은 날'을 임의로 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 왜 하필 6월6일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현충일을 정할 당시 정부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그 기념일을 6일 현충일로 잡았다는 점이다. 즉, 원래 현충일은 6.25 전쟁 참전용사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날이었다. 이들을 사무적인 낱말로는 '전몰장병(戰沒將兵, 전쟁에서 죽은 지휘관과 병사들)'이라 호칭했고, 좀 더 높여부른 말로는 '호국영령(護國英靈, 나라를 지킨 꽃다운 넋 )'이라고 했다. 나라를 지켜야 하는 상황은 한국전쟁을 가리키고, 꽃다운 넋은 젊은 나이에 죽었음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영령(英靈)은 죽은 사람의 넋을 높이는 말이지만, 6.25의 넋들은 대부분 이제 막 피어나던 꽃다운 청춘들이었기에 이 호칭은 더욱 각별해졌다.

1965년 대통령령으로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된다. 국립묘지에는 6.25전사자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일제하 독립운동 순국자까지 추모하는 곳으로 확대된 개념이다. 이때 '현충일의 개념'도 넓어진다. '현충'은 6.25의 호국을 넘어, 순국선열(殉國先烈)까지 포함시키면서 오늘날의 현충일 의미에 이르렀다. 1997년 4월2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지정하였으나, 여전히 현충일 또한 순국선열을 함께 기리는 날로 내려오고 있다.

# 순국은 원래, 망한 나라를 따라죽는 '국망자결'의 의미

이렇게 된 까닭은, 현충일의 개념을 단순히 6.25 전쟁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날이 아니라, 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일제치하의 분투까지를 포함해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을 찾고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을 기리는 날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순국(殉國)이라는 말은 인상적인 말이다. 순(殉)자는 그냥 '죽음'이 아니라, 어떤 죽음에 대해 따라 죽는 죽음을 의미한다. 옛 황제의 죽음에 가까웠던 사람이나 동물을 산 채로 함께 묻었던 고대의 끔찍한 제도를 순장(殉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미를 살린다면, '순국'은 '죽은 나라와 함께 죽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죽은 나라'의 기억은 일제 병탄과 그 이후의 식민지 시절이다. 망국에 죽음을 택한 황현과 민영환 같은 이가 행한 일이 바로 '순국'이다. 죽음에 이른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도 상징적으로 '순국'으로 칭하면서, 많은 독립투사들이 순국선열에 포함된다.

# 현충일이 순국선열까지 확대된 건, 박정희의 의욕

현충일이 순국선열까지 기리는 날이 된 데에는, 기묘하게도 박정희 정권의 '정권 정체성 확보' 노력이 들어있기도 하다. 쿠데타 이후 박정희는, 자신의 군사정부가 이전의 자유당이나 민주당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독립투사들을 적극적으로 기리기 시작한다. 즉 이승만이 일제의 잔영을 청산하지 못했고 이어 집권은 민주당 정부는 혁신을 하기에는 무능했다고 평가하면서 군사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현충일에는 그런 곡절들까지 숨어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은 마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이 하나의 '세트'처럼 붙어 묵념의 대상이 된 까닭에, 두 낱말의 개념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도 흐려진 게 사실이다. 현충일이 생겨날 때의 개념은 '호국영령의 기념일'이었으며, 이후 이 나라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일제 치하 독립운동까지 넓혀 '순국선열'을 포함시켜 '확대 현충일'이 되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그리고 이 순국선열에 대한 추가적인 개념확대(좌익 포함 문제)가, 2019년 현충일 추념사 논란의 핵심이다.
 

[연합뉴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