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발목잡힌 화웨이…손익 계산 복잡해진 삼성
2019-06-03 19:00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 감소…IM 반사이익
美 제재 동참 요구땐 부품 공급 타격 불가피
美 제재 동참 요구땐 부품 공급 타격 불가피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대표이사(사장)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9회 호암상 시상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가운데, 삼성전자의 손익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한 것이다.
고 사장의 '표정 관리'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놓고 분주하게 손익을 계산하고 있는 그룹 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 사장이 맡고 있는 스마트폰과 5세대(5G) 이동통신장비 사업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지만, 삼성전자의 다른 부문과 일부 계열사들은 입장이 다르다.
미 정부가 향후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까지 도입한다면 한국 기업들도 화웨이와 거래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에 제재에 동참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메모리 반도체·디스플레이·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등 삼성의 부품 공급 사업은 타격을 입게 된다.
◆점유율 경쟁 중인 스마트폰·5G 장비는 반사이익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되는 곳은 삼성전자의 IM부문으로 평가된다. 퀄컴·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을 비롯해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대다수 기업이 화웨이와의 관계를 끊으면서, 화웨이는 정상적으로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최근 화웨이의 핵심 생산기지인 중국 폭스콘 공장의 일부 라인 또한 가동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9.2%, 화웨이는 15.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화웨이가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게 되면, 삼성전자가 최소 30% 이상을 가져갈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미국 CNBC는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매달 800만~1000만대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5G 이동통신장비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의 약진이 예상된다. 지난 1분기까지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뒤를 이어 화웨이가 28%로 2위를 차지했다.
현재 일본과 유럽, 호주에서도 5G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는 화웨이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일본을 찾아 NTT도코모, KDDI 등 현지 1, 2위 이통사와 만남을 갖는 등 주도권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화웨이 협력사'는 손익 계산 분주
반면 화웨이를 고객사로 두고 있는 삼성전자의 DS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은 셈법에 한창이다.
DS부문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전체 메모리 매출의 5~10%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정상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출하량 축소는 곧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회복세가 2분기 들어서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이다.
반대 의견도 있다. DS부문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자사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확대되면 화웨이에 공급하던 메모리 물량을 그만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기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이용하던 다른 중국 업체들까지 삼성전자에 '엑시노스' 공급을 요청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워낙 다양한 종류의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유불리를 따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기의 경우 소폭의 매출 감소가 유력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화웨이에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출시된 화웨이 스마트폰 'P30'은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를 탑재했다. 삼성전기 또한 화웨이에 MLCC를 공급 중이다. 그러나 양사 모두 납품량 규모가 크지 않아 치명적인 수준의 피해는 아닐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