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新격랑시대]시진핑 'GO' 외친 일대일로, 무역전쟁 파고 넘을까

2019-05-28 16:30
②미·중 아시아 패권싸움
美 극한 압박에도 "포기 없다" 재확인
경제위기에 '금권외교' 지속성 의구심
일대일로=패권전략 경계 푸는게 관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26일 베이징에서 개막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CCTV 캡처]


"모두 함께 멀리 보며 손을 잡고 나아간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건설의 아름다운 미래를 보게 될 것이다."

지난달 26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 내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지만 2년 전 첫 포럼 때보다 8개국이 늘어난 37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등 행사 규모는 더 확대됐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건설을 제안한 것은 인류가 직면한 각종 위험과 도전에 맞서고 공동 발전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며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견제와 압박에도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대일로는 단순한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중국의 패배로 끝나지 않는 한 일대일로의 불씨는 절대 꺼질 수 없다.

◆지속 성장 위한 고심의 산물

시 주석은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륙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축을 제안했다.

10월에는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에서 해양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달 뒤인 11월 중국 공산당 18기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는 두 구상을 합친 일대일로 추진을 공식화했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이 처음 제시한 어젠다이자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창조물인 셈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일대일로에 집착하는 게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다. 일대일로 카드를 꺼내들게 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모든 정치·사회·문화적 이슈는 경제적 차원의 문제로 수렴된다.

일대일로는 △중서부 내륙 개발 동력 확보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유라시아 경제 영토 확장 △내부 공급 과잉 해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고도 성장기에서 막 벗어난 중국 경제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비등하던 시점에 국제 사회에 내민 해법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아프리카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트럼프 도발에 발목 잡혀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돌파구를 찾으려 한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압박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외교와 군사 정책의 중심축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피벗투아시아(Pivot to Asia)'를 선언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 국가를 공격적으로 늘리며 맞불을 놨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본격적인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대일로를 '매우 모욕적인(insulting)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모욕적이라는 표현은 중의적이다.

글로벌 패권국인 미국에 도전했다는 데 화가 난 것일 수 있고,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부채의 함정'에 가두는 일대일로 건설 방식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미·중 무역전쟁은 일대일로 확대를 제어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거액의 선물 보따리를 안기는 전술을 즐겨 사용한다.

지난해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900억 달러(약 107조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3월 시 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는 일대일로 참여를 독려하며 에어버스 항공기 300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문제는 무역전쟁 발발로 중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갈등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중국의 경기 하방 압력이 심화할 경우 특유의 '금권 외교'를 지속하는데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공세로 중국이 위축된 틈을 타 '중국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 말레이시아 등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기존 일대일로 관련 협상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며 새 판 짜기를 요구하는 중이다.

◆일대일로 '찻잔 속 태풍' 그칠까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에는 아프리카 역내 54개국 중 5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대만 수교국인 에스와티니(전 스와질란드)만 빠졌다.

중국이 일대일로 참여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고 주장하는 100여개국 중 절반 정도가 아프리카 국가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아프리카 내 친중 성향은 단순히 경제적 보상으로 형성된 게 아니다"며 "검은 대륙의 마음을 사기 위해 중국이 수십년 동안 노력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근 방중한 아미우톤 모우랑 브라질 부통령은 무역전쟁이 한창인 와중에도 일대일로 참여 의지를 재확인했다.

올해 들어서만 이탈리아·스위스·그리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줄지어 일대일로 참여를 선언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들 3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연합(EU) 국가는 일대일로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대일로의 미래는 '자유무역의 수호자',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 등 시 주석이 입만 열면 내뱉는 구호에 담긴 진정성의 정도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