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모디 집권 2기 기대와 불안
2019-05-29 07:10
인도 고도성장·경제 개혁 이끈 모디 총선거 압승
힌두 민족주의 강화·경기둔화·실업난은 과제로
힌두 민족주의 강화·경기둔화·실업난은 과제로
인도 13억 국민이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다시 희망을 걸었다. 올해 총선에서 고전할 수 있다는 예상과 달리 모디 총리가 이끄는 힌두 민족주의 성향 인도국민당(BJP)은 단독으로 의회 과반 의석을 가뿐히 확보하면서 집권 2기 모디 총리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청신호를 켰다.
모디 총리는 경제·사회적으로 인도의 기초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지난 5년을 보냈다면, 앞으로 5년은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고 인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30일 취임식을 통해 집권 2기 정부를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새로운 인도' 희망 계속
모디 총리가 처음 정권을 잡은 건 거시경제의 불안 속에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정책이 표류하던 5년 전이다. 모디 총리는 가장 가난한 주(州) 중 하나였던 구자라트주의 고도성장을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의 도시화, 산업화, 현대화를 통한 '새로운 인도'를 약속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열망하던 인도 유권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당시 모디 총리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전기 및 인터넷 보급과 부정부패 근절을 호언하고 인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고 했다. 결단력 있고 친(親)기업적이며 청렴결백한 지도자로서 모디의 명성은 인도를 중국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으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부채질했다.
실제로 '모디노믹스'(모디 총리의 경제 정책) 아래 인도 경제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모디 총리가 ‘메이드 인 인디아’ 캠페인으로 제조업을 육성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면서 성장률은 7%를 상회, 중국을 앞섰다. 경제 규모는 2014년 세계 10위에서 2018년에 7위로 껑충 뛰었다. 2030년까지 인도 경제를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까지 올려놓겠다는 게 BJP의 목표다.
경제 개혁도 진행됐다. 주별로 제각각이던 세금 제도를 통합해 사업 효율성을 개선하고 과세 기반을 확대했다. 부실 기업이 국영 은행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던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신속한 파산절차를 마련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됐다. 빈곤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화장실을 짓고 값싼 주택과 공공 의료보험을 제공했다.
집권 1기 막판 경기둔화, 일자리 부족, 농촌 빈곤 등 민생 현안이 급부상하면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모디 총리에게 거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총선 결과가 말해준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BJP는 전체 연방하원 543개 의석 중 303석을 차지했다.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5년 전보다 의석이 늘어났다. 반면 인도 정치 명문가 출신 라훌 간디가 이끄는 인도국민회의(INC)는 모디노믹스 심판론을 앞세웠으나 52석을 얻는 데 그쳐 체면을 구겼다.
◆힌두 민족주의 강화에 우려의 시선
"모디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BJP를 찍었다." 패션 디자이너 산딥 베르마가 최근 AP통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지금 인도에는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라훌 간디한테 그런 면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안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모디 총리의 승리가 오로지 그가 일군 성과와 정치적 수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실 모디의 총선 압승은 지난 2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유권 분쟁 중인 카슈미르에서 자폭 테러가 터진 게 주효했다. 모디 총리는 경제에서 깎인 점수를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군사 갈등, 인공위성 격추 실험 등 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강한 지도자' 이미지로 만회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종교·계층간 갈등이 불거지고 힌두 우선주의가 사회적 긴장을 악화시켰다. 안 그래도 힌두 강경파인 모디 총리 아래 인도가 다종교 세속주의에서 힌두 민족주의 국가로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BJP는 2000년 무슬림을 겨냥한 폭탄 테러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힌두 과격파 프라기아 싱 타쿠르를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시 총선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기도 했다. 요겐드라 야다브 정치 애널리스트는 모디 총리의 집권 2기에는 "인구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가 다수결 원리를 내세워 무슬림 등 소수집단을 '2등 시민'으로 낙인찍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고 봤다.
모디 총리의 경제 개혁 드라이브가 약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타와 소재 칼레톤대 비벡 데헤지아 경제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모디 총리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삼던 경제 개혁 없이도 선거 승리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장 둔화와 일자리난 해소 시급
집권 2기 모디 총리가 풀어야 할 경제 과제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7%를 상회하던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에는 6.6%까지 낮아졌다. 올해 1분기 산업생산은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3월에는 전년 대비 0.1% 줄어들었다.
민간 소비와 투자가 점점 힘이 빠지는 데다가 지난 5년 성장 동력을 제공하던 정부 재정 여력에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올해 인도 정부는 재정적자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3.4%로 정했지만 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모든 농민에게 매년 6000루피(약 10만3000원)의 현금을 지원하고 고속도로와 지하철 등 인프라 건설에 100조 루피를 투입하겠다는 총선 공약은 재정을 더 악화시키거나 빈말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실업문제는 더 현실적이다. 매달 청년 100만명이 노동시장으로 유입되지만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모디 총리는 집권 1기 연간 10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인도는 2년 넘게 공식 고용지표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최근 유출된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까지인 지난 회계연도에 실업률이 6.1%를 기록, 45년 만에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업체에서는 실업률이 7.6%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나라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국민의 생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1인당 GDP는 지난해 기준 1976달러(약 235만원)로 여전히 중국(8762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구매력에서 중국과 10년 넘는 간극이 있다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호주의와 과잉생산의 시대에 중국형 수출 주도 모델을 따르면서 인도를 세계의 사업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더 이상 발전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만들면서도 고도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모디 총리 앞에 놓여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