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희토류 빅리스크 예고…'美中대충돌'에 한국 손놨나
2019-05-24 15:31
이수완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9~10일 워싱턴 고위급 회담이 결렬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냉전에 돌입했음을 사실상 선포했다. 미국은 5G 이동통신 기술의 선도업체인 화웨이 '고사(枯死)작전'에 나서면서 동맹국들에게 대(對)화웨이 거래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압박할 주요 무기인 '희토류 카드'까지 만지작 거리며 대미 장기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미.중간 무역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복잡하게 꼬이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충격파는 일파만파 확산될 조짐이다.
내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16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농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미.중간 무역전쟁 여파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자신의 핵심 표밭 중서부 '팜 벨트'(Farm Belt·농장지대)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미.중간 협상이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최근 거래제한 조치를 내린 화웨이 문제도 '무역 합의(a trade deal)'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무역협상에서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화웨이 카드'를 노골적으로 꺼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달 말 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보였던 양국간 무역 협상은 일부 사전 '합의 내용'에 대한 견해차가 막판 불거지면서 '노딜'로 끝났다.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미.중의 치열한 '장외전'은 양국의 무역 갈등이 본질적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 과학.기술 분야 우위 확보를 위한 '헤게머니' 싸움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목조르기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신경망이 될 5G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한발 앞서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줄기 위한 '숫자' 싸움 차원을 넘어 기술굴기를 통한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과거 소련과 일본의 추격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냉전시대 군사적으로 라이벌 이던 소련은 1980년대 말 붕괴하고, 미국 경제를 위협하던 일본은 1990년대 초 '잃어버린 20년'의 불황에 빠졌다. '일대일로'와 '제조업 2025'라는 두개의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워 미국을 넘보는 중국. 일찌감치 중국의 경제적 예봉(銳鋒)을 꺾기로 작정한 미국. 이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한 쪽이 백기를 들지 않는 한 양국의 '총성없는 전쟁'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 13일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25% 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맞불을 놓았다. 이날 왕위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러시아 소치에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 "중국은 어느 나라와 담판하더라도 국가의 주권과 인민의 이익, 민족의 존엄을 반드시 지킨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무역협상에서 미국의 태도가 일정한 선을 넘어 중국에게는 내정간섭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미국 시장 진입 금지를 선포하며 무역전쟁의 판를 키우자, 중국은 시진핑 주석을 선봉으로 '대미 항전 의지'로 불타고 있다. 시 주석은 21일 미중 무역 협상대표인 류허 부총리와 함께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관련기업을 시찰했다. 희토류는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의 필수 원료로 중국이 전 세계 생산 70% 이상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관세실탄'이 소진될 경우 사용될 반격 카드로 자주 거론된다. 시 주석은 같은 날 과거 중국 공산군(홍군) '대장정(大長征)'의 출발지인 간저우시 위두현 기념비에 헌화하기도 했다. 중국 주요 매체들은 '신(新)대장정'을 일제히 부각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4일 1면 논평을 통해 올해는 신중국 70주년으로 "우리는 오늘 새로운 대장정 위에 서 있다"며 "이 세대의 대장정은 '양대 100년'(공산당 창당 100주년·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바꾸지 않을 경우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열어 무역 담판을 지을 가능성도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최근 중국 측에서 나오는 발언의 강도를 놓고 볼 때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다고 진단한 것이다. 신문은 "두 정상의 공식적인 양자 회담이 없다면 이는 단기간 내에 무역협상이 타결될 가능성 또한 없다는 것을 뜻한다"며 "양국의 무역·기술 분쟁이 장기전으로 악화한다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 제 1.2위 경제대국의 미.중 무역전쟁이 한치 양보없는 대결로 전후 70년 넘게 어어져온 자유무역질서는 뒤흔들릴 조짐이다. 특히 두 나라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수출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우린 4차혁명시대 과학.기술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양국의 '헤게머니 경쟁'을 그냥 눈치만 보고 지켜만볼 수 없다. 정부는 위기감을 갖고 우리 기업들이 경제 풍파를 극복할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은 이제 트럼프의 강공과 중국의 거센 저항으로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트럼프가 되든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나든 계속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중 양국에 무역의 40%를 의존하는 한국은 양국의 갈등으로 수출이나 금융시장 불안등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게다가 트럼프의 미국이 중국에 집중하면서 북핵 해결구도 설정도 쉽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대내외 전략 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 했다. 일단 경제적으로는시장과 무역다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중국의 글로벌부품공급사슬을 보완하는 산업적 대책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외교와 관련해서는 북.중.러 구도의 복원과 미.일 밀착구도의 구축에 한국이 소외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대일 관계개선에 나서 한.미.일간의 지렛대를 구축해야하며, 중국과 러시아와도 활발한 소통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자칫 우리의 외교 레버리지를 스스로 봉쇄하는 꼴이 될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