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오너 책임경영 강화" vs "자유시장경제 위배"
2019-05-26 14:33
- '특경법 시행령 개정' 논란...경제범죄 재벌총수 경영권 박탈
배임·횡령 등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의 경영권 복귀를 막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즉 J노믹스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이다.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오너의 책임을 강화해 결과적으로 경제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한 경제범죄로 기업체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사람이 다시 그 기업에 취업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경제사범에 대한 취업제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의 이유”라고 했다.
이와 관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5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속적인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제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필요하다”며 “중요한 것은 총수들이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특경법 시행령 개정을 찬성하는 시민단체는 오히려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팀 간사는 “재벌총수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면 이는 회사에 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에 대표이사로 계속 있어서는 안 된다”며 “나아가 거래소 상장 폐지요건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제재에 앞장섰던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시행령 개정은 경제범죄자 취업제한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가장 쉬운 부분만 임시조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재계와 우파 학자들은 강력히 반발한다. 적용 범위가 광범위한 배임·횡령 등의 죄로 오너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절차적 문제점도 집중 공격 대상이다. 경영권 박탈은 일종의 자격정지, 즉 형벌이라는 게 이들의 관점이다. 이를 국회 논의가 없는 시행령 개정으로 정한 것은 죄와 벌은 법에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라며 “이를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시행령을 고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판단의 원칙상 뜻하지 않게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해도 판단을 내릴 당시 상황을 감안해 합리적 판단이라고 보이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배임죄 규정이 폭넓은 우리나라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A그룹의 한 임원은 “규제가 과도하다”며 “기업은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데 규제에 발이 묶여 기업가 정신이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도 관련 규제가 있다. 독일의 경우 형법 제 70조에 따른 '직업금지명령'을 통해 경제사범이 일정기간 범죄행위와 관련된 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다만 우리와 달리 취업제한 기업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경제 차원에서 적절하다”며 “관계사나 자회사까지 취업제한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을 거론하며 “(조현아는) 배임·횡령죄 판결이 난 뒤에도 자회사로 복귀했다”고 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너는 전문경영인이 아니다. 대부분 최대주주”라며 “주주이익을 훼손하는 잘못된 결정은 곧 자신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형사처벌을 받고 기업가치가 떨어져 손해를 봤는데 사실상 경영권까지 박탈하는 것은 다중처벌”이라고 했다.
특경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논쟁은 위헌 논란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라며 “(경영권 박탈 문제는) 해당 기업 자체가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운영과정에서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게 우선이란 시각도 있다.
특경법 제14조는 5억원 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면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한 해당 기업 등에 해임을 요구해야 하고, 해당 기업은 그 요구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채이배 의원은 “경제법죄자 취업제한 제도의 소관부처인 법무부에 제재 건수를 문의한 결과 제재를 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법은 만들어져 있는데 운영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