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ㆍ금호처럼 '남보다 못한 관계'된 그룹은

2019-04-18 09:09
롯데, 2대에 걸쳐 형제간 갈등…삼성, 이맹희ㆍ이건희 회장 신탁재산 소송
한화, 모친 칠순 계기로 화해…범LG, 구ㆍ허씨家간 갈등 없이 승계ㆍ분리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조 회장의 빈소를 찾고 있다. [연합뉴스]

[데일리동방]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로 한진가(家) 형제의 화해는 어려워졌다. 항간의 표현대로 ‘피보다 진한 돈’을 둘러싼 재벌가 다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족 간 협력을 강조한 조 회장의 유언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진가 형제들은 깊은 감정의 골을 살아생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은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그러나 고(故)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별세 이전 형제들이 공식석상에서 마주한 때는 모친 고(故) 김정일 여사가 타계한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조양호 회장은 자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에게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기업을 이끌어 나가라’고 유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원태 사장은 고 조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승계 준비가 미흡해 한진그룹 지키기가 원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원태 사장의 삼촌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메리츠금융지주는 조원태 사장의 백기사도 흑기사라도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진가 큰집과는 이미 남이이 됐다는 것만 재차 확인한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형제 간 갈등을 겪었다.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의 3남 박삼구 전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하며 그룹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그는 이를 계기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둘로 쪼개졌다. 박삼구 전 회장이 수조원대 대형 인수합병을 강행하자,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팔아 금호석유화학 경영권을 확보하며 분리에 나섰다. 결국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등 항공·건설·운수부문을 맡고,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등 석유화학 부문을 가져갔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금호아시아나그룹 제공]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오면서 동생 박찬구 회장의 역할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반응은 회의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나항공 출범 초기부터 별다른 인연이 없던 박찬구 회장이 단순히 집안 사업이었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아시아나 항공을 인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도 있다. 당초 두 형제가 부딪힌 이유가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기업 인수였다는 점도 박찬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소극적인 근거로 거론된다.

그룹 형제가 갈등이 최초로 시작된 기업은 롯데다. 라면 생산을 놓고 신격호 회장과 갈등이 생긴 신춘호 회장은 결국 농심을 세워 분가했고, 신준호 회장도 형인 신격호 회장과 땅 문제로 관계가 멀어지면서 롯데햄과 우유를 분리해 독립했다. 분리 당시 롯데햄우유라는 기업명을 사용했으나 롯데그룹이 '롯데'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푸르밀로 사명을 바꾸게 됐다.

롯데가 형제간 갈등은 2세로 내려와서 또다시 이어졌다. 창업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2015년 7월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했다. 긴급 이사회를 연 신동빈 회장은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무효행위로 규정했다. 이후 주총 대결에서 잇따라 형을 이긴 신 회장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뇌물공여와 경영비리 사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며 승기를 잡았다.

삼성가 역시 형제 간 다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한때 삼성의 황태자로 불리던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탁 재산 명의를 몰래 단독으로 바꿨다며 2012년 소송을 냈다. 형제의 장외설전은 “건희는 형제지간에 불화만 가중시켜왔고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이맹희 회장)” “우리 집에서는 퇴출당한 양반(이건희 회장)” 등 점입가경으로 이어졌다.

삼성가 형제 다툼으로 이목을 끈 사건은 이건희 회장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중국에서 폐암 투병을 이어가던 이맹희 회장은 2015년 8월 눈을 감았다.

반면 서먹했던 형제가 다시 손을 잡은 경우도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창업주 고(故) 김종희 회장이 1992년 세상을 뜬 뒤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지분 분할 문제 등 유산을 둘러싼 재판을 이어갔다. 이후 형제는 1995년 할머니 장례식과 어머니 칠순을 계기로 재산 분할에 합의・화해하고 깊은 우애를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현대그룹 형제 간 다툼도 유명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0년 3월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동생인 고(故) 정몽헌 회장과 경영권 승계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대건설 위기를 계기로 그해 11월 화해했다. 현대건설은 2011년 현대차그룹에 매각됐다. 당시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현 하나은행)은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지만, 막판 이를 뒤집은 바 있다. 매각 입찰 과정에서 현대차와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간 법정 다툼이 있었지만 현대그룹 측이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재벌가 진흙탕 싸움에서 자유로운 대표적인 사례는 범 LG가(家)다. LG 가족은 LG와 GS, LS 등으로 나뉘는 과정에서 별 다른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 타계 직후인 1970년 1월 동생 구철회 사장은 경영 퇴진을 선언하고 조카인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을 회장에 추대했다. 구철회 사장의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에서 독립한 LIG그룹을 만들었다.

특히 LG그룹은 고 구인회 회장과 고 허만정 회장이 공동으로 창업한 후 계열분리 과정에서 형제간에는 물론 두 집안간 분쟁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 범 LG가는 계열분리 이후에도 서로 중복되는 사업은 하지 않으면서 경쟁을 피하고 있다.

잡음 없는 그룹 승계 전통은 1995년 장남 구본무 회장이 회사를 물려받을 때도, 현 구광모 회장 체계에도 이어졌다. 구본무 회장 취임 당시 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LG상사 최대 주주 구자승 씨 일가는 LG패션으로 분가하는 등 계열 분리와 기타 사업을 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