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대성당, 1320년 완공 때 건축물 아닌 현대 구조물?

2019-04-16 09:49
프랑스 혁명 등으로 파괴된 대성당, 19세기 초 철거 위기에 놓여
1845년 복원 처음 계획…현재의 유지·복원 작업은 1991년부터 진행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15일(현지시간) 저녁 화염에 휩싸였다. 대성당 첨탑이 불길과 연기 속에 무너졌다. 이를 지켜보던 파리 시민들은 무너지는 첨탑과 붉은 화염에 휩싸인 대성당을 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파리시와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50분경 파리 구도심 센 강변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검은 연기와 시뻘건 불길이 솟구쳤다. 경찰은 대성당 주변의 관광객과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진화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화염이 3시간가량 잡히지 않아, 파리 시민은 물론 전 세계인이 안타까워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1776년).[사진=위키피디아 캡처]


◆ 현재의 대성당, 1320년 완공 때 건축물 아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으로 21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1163년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착공돼 1320년에 완공됐다. 그러나 현재의 대성당은 완공 당시의 건축물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의 대성당은 프랑스 혁명 등 수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파괴됐고, 이후 재건축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건설 도중에도 완성 후에도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로 쓰인 대성당은 19세기 초 최대 위기에 놓였다. 당시 파리는 혁명 과정에서 파괴된 도시 재생을 논의하고 있었고, 혁명과정에서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노트르담 대성당의 철거하자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

종교적인 의의보다 이성이 중시된 혁명시대의 대성당은 사료 창고로 쓰이고 종과 조각 등이 파괴되는 등 수난의 시대를 맞이했다. 1793년 프랑스 혁명 때에 노트르담은 이성숭배에 봉헌된 뒤, 최고존재숭배에 봉헌됐다. 이때 대성당의 많은 보물은 파괴되거나 강탈당했다.
 

프랑스 파리 대주교의 다리에서 본 노트르담 대성당(위), 15일(현지시간) 화재로 검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아래). [사진=위키피디아(위), EPA·연합뉴스(아래)]


◆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 대성당 부활시키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Dame de Paris)-노트르담의 꼽추’에 의해 재건축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철거 위기에 놓이자 빅토르 위고는 1831년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위고는 작품을 통해 프랑스 민중이 노트르담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와 미래를 재해석하길 원했다. 결국, 그의 소망은 ‘노트르담 보존’이라는 결론을 냈고, ‘노트르담 대성당’ 복구로 이어졌다.

1845년 건축가 장바티스트앙투안 라쉬와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감독 아래 대성당 복원 계획이 진행됐다. 첨탑의 일종인 ‘플레슈(flèche)’를 건립하고, 시메르 갤러리(alerie des Chimères)의 키메라들을 추가하는 것을 포함해 이들의 복원 작업은 25년간 계속됐다.

1871년 파리 코뮌시기(파리 시민·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대성당은 1991년부터 유지 및 복원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애초 10년간 진행할 예정이던 작업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화재로 850년을 지켜온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 대성당’은 뼈대만 남게 됐다. 미국 CNN, 영국 BBC 등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든 것이 타버려 뼈대만 남게됐다”며 화재 소식을 전했다.

로랑 뉘네 프랑스 내무장관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A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파리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 원인이 잠정적으로 개보수 작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