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람코, 화학기업 사빅 인수...'비전 2030' 속도 내나
2019-03-28 08:47
사빅 지분 70% 매입...691억 달러 수준 추정
FDI 감소 등 경제난에 경제개혁 제자리걸음
FDI 감소 등 경제난에 경제개혁 제자리걸음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가 중동 최대 석유화학기업 사빅(SABIC)을 인수한다. 사우디의 사회·경제 개혁안인 '비전 2030'을 통해 왕국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아람코는 사우디 국부펀드 중 하나인 공공투자펀드(PIF)로부터 사빅 지분 70%를 매입하기로 합의했다. PIF와 사빅의 지분 취득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이다. 인수 금액은 691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PIF는 사우디의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국부펀드다. 소프트뱅크와 제휴해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기술투자기금 '비전펀드'를 조성했다. '비전 2030'의 자금줄인 셈이다.
비전 2030은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등 사우디의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해 관광·레저, 엔터테인먼트, 부동산 개발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다는 중·장기 계획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2015년 권력을 잡은 뒤 줄곧 집중해온 과제기도 하다.
그러나 그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전 2030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국제유가가 급락한 탓이 크다. 이 여파로 사우디 정부는 세금 인상과 보조금 삭감에 나서 개인과 기업에 재정 부담을 떠안겼다. 지난 2년여동안 700억 달러가 넘는 국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사우디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한 것도 경제난에 불을 질렀다.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캬슈끄지 살해 사건과 카타르와의 무역 분쟁, 예멘 공격을 통한 민간인 학살 등으로 외국 투자자의 시선이 따가웠던 탓이다. 실제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10여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당초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본 조달을 꿈꾸기도 했으나 거듭 미뤄지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2021년까지 IPO를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인수를 통해 사우디 2대 대기업이 합병하면서 IPO를 통해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금액과 거의 동일한 비용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PIF가 사빅 지분을 매각한 대금으로 비전 2030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게 되면서 아람코는 석유 생산부터 석유화학제품 생산까지 일원화된 사업 구조를 보유하게 됐다고 외신은 평가했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석유 사업을 통해 탄력적인 수익성을 얻을 수 있는 데다 2030년까지 석유 정제 능력을 두 배로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으로 아람코의 석유화학 사업 포트폴리오가 확장되면 IPO에 앞서 회사 가치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두바이 기반 컨설팅업체인 카마르 에너지의 로빈 밀스 최고경영자(CEO)는 "국부펀드의 계획은 비전 2030의 가장 눈길을 끄는 요소이지만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한 서구식 법률 도입 같은 더 평범한 조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약 3만4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사빅의 시가총액은 약 1000억 달러에 이른다. 아람코는 나머지 지분에 대한 인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