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복동' 정지훈, 남들이 '왜'라고 물을지언정
2019-03-08 17:02
그러나 배우 정지훈(36)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의 위기와 시련을 직접 부딪치고 넘어 도리어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 "모든 걸 터놓고 속 시원히 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담담한 얼굴에서 그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희망을 잃은 시대에 쟁쟁한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휩쓴 '동양 자전차왕' 엄복동을 소재로 한 작품.
이번 작품에서 정지훈은 자전차 한대로 조선의 희망이 되었던 인물 엄복동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아주경제는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활약한 배우 정지훈을 직접 만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과 연기 활동, 가수 활동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정지훈의 일문일답
7년 만에 복귀작인데. 왜 '자전차왕 엄복동'이었나?
- 제가 2013년에 제대하고 앨범을 내고 드라마를 찍고 월드투어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7년이라는 공백이 생기더라. 가수와 배우 생활을 병행하면 장단점이 있는데 일정 때문에 작품을 놓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일정이 깔끔하게 떨어졌을 때 '자전차왕 엄복동'을 만나게 됐고 도전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다.
어떤 점이 정지훈의 '도전 의식'을 깨웠나?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 아쉽게도 엄복동 선생님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다. 이 분이 왜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까? 저는 먼저 그 점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처음부터 '민족 영웅'이었을까? 가볍게 시작했던 건데 운이 좋았던 걸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더라. 이 시작점에 따라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질거라고 생각해서 많이 공들였고 고민을 오래 했다. 결단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제가 내린 결론은 '자전차가 그저 좋았다'였다. 그의 순진무구함에 결국 대중이 따라왔고 그의 진심을 좋아했던 거 아닐까?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후 엄복동 선생님이 중국에서 활동했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했고 자전거를 훔쳤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정작 '왜'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가상의 설정도 만들 수 없었다. 중간 연결이 힘들었고 설명하기까지가 힘들었다.
이처럼 자료가 전무한데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으로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계속해서 질문했다. '신념에 의해서 자전차를 탄 거야?' '그저 좋아서 탄 거야?' 꾸준히 물었다. 시나리오에 도표를 만들어서 설정들을 이어갔고 카테고리도 따로 만들었다. 그 옆에 복동이 지을 표정까지도 세세하게 작성했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나를 버렸다. 감독님도, 이범수 선배도 함께 모니터링을 하면서 '이건 네 표정 같아. 엄복동이어야 해'라며 나를 지워나갔다.
철저하게 정지훈을 지워나갔다는 말이 인상 깊다
- 가상 인물이라면 원래 제 방식대로 연기했을 거다. 그러다 보면 저의 모습도 녹아있었겠지. 하지만 제 식대로 엄복동을 연기했는데 잘 못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 않나. 조심하려고 한 거다. 영화 속에서 힘을 모아 악 지르는 표정 등등은 제 평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르게 연기하려고 애썼다.
영화 속에서 엄복동이 스피드를 내기 위해 엉덩이를 치켜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른바 '엄복동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장면인데
- 자전거를 좌우로 흔들면서 허벅지 힘으로 막판 스퍼트를 내는 거다. 복동이 바위를 굴리고 안장 없이 자전거를 타는 등 훈련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과 엉덩이를 치켜드는 장면이 함께 나오면서 관객들이 그걸 그만의 '스타일'로 이해하길 바랐다.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타는 것' '누구나 그렇게 타는 거 아닌가?'라며 맥빠져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자전차가 너무 낯선 존재 아닌가. 마치 슈퍼카를 보는 듯 신기했을 거다. 그에 대한 낯선 감각과 감정을 줘야 했고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거 같다
-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자전거를 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영화를 보는데 그 고생이 여실히 느껴졌다. 울컥하는 기분까지 느껴지더라.
영화를 두고 '국뽕'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관해 아쉬움도 있을 거 같다
- 아쉽다. 이에 관해 속 시원히 말씀드리고 싶다.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영웅화시키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화들을 영화에 녹여냈는데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거다. 영화에서 이른바 '국뽕'이라 불리는 문제의 장면들은 실제로도 자료로 남아있는 장면이다. 일본인을 제친 엄복동을 두고 일본군이 조준사격을 했고 민중들은 모두 뛰어나와 그를 막아선다. 이에 '재미를 주려고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국뽕'이라며 억누르는 게 왜곡인 거다. 너무 나쁘게만 보고 해석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 저도 코미디 연기를 좋아하고 또 해보고 싶다. 사실 제가 남들을 웃기는 걸 정말 좋아하고 있거든. 이른 바 '병맛' 코미디도 정말 탐난다. 장르, 영화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걸 열어두고 있다. 아트 무비, 단편영화까지 해보려고 접촉 중이다.
규모가 큰 상업영화에 대한 부담을 느끼나?
- 그렇다. 사실 부담도 있다. 그러나 제작환경과 상관없이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로 타이틀을 달면서 '의외성'이 있어야지. '쟤가 저런 연기도 해?'라는 의외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니, 제 만족인가. 사실 제 만족인 거 같기도. 하하하.
앨범 계획은 어떻게 되나? '깡'도 이러한 '의외성'을 기반으로 두었나?
- 그렇다. 저는 이제 '아이돌'이 아니니까. 저를 비롯해 이효리, 보아, 동방신기 같은 친구들 정도의 연차는 획기적인 시도만이 남아있지 않나.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한다고 본다. 멋지고, 예쁜 건 지금 현역 아이돌이 해도 충분하다. 선배고 연차가 높다면 오히려 획기적인 시도를 해야한다. 그게 호오가 갈리더라도 말이다. 엄정화 선배님을 예로 들면 이해가 훨씬 더 빠르겠지. 그 분이 음원성적에 욕심이 있겠나?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너무 멋지잖아.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 새로운 걸 내놓는 것.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그렇다면 비의 다음 '도전'은 무엇인가?
- 홍대에서 유명한 DJ들과 접촉하고 있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다. 남들이 제게 '왜?'라고 물을 지언정 계속해서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