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北비핵화 ‘적극적 중재’의 마지막 기회
2019-03-04 05:05
북미 설득은 우리의 몫 .우리만의 중재 원칙 필요
2차 북·미정상회담이 어떠한 합의도 보지 못한 채 지난 28일 종결되었다. 귀국 길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에 전화를 걸어 앞으로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적극적인 중재를 당부했다고 한다. 자신도 하지 못한 일을 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문일까? 이의 수용 의사를 보여주듯 3·1절 기념사에서 신한반도체제, 신평화협력공동체와 평화경제를 일궈내겠다는 대통령의 결의가 선언되었다. 무슨 근거로 이런 자신감을 표출했는지 국민은 지금 의아스러울 뿐이다.
이도 그러한 게 미국이 당부한 일을 중국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인민일보 해외판에 따르면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작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의 G-20정상회의를 빌려 베푼 만찬 자리에서 북한의 설득을 요청했다. 이 역시 의아스러운 일이었다. 트럼프는 작년 5월 김정은의 2차 방중 이후 북한의 중국 비핵화 전략 수용에 대해 ‘중국 배후설’을 8월까지 맹비난했었다. 그의 중국 개입에 대한 불쾌감은 1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일시적인 취소로 표출되었다. 그랬던 그의 중국에 대한 태도가 불신에서 기대로 전환되었다. 결과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듬해 1월 8일 김정은의 4차 방중이었다. 또 하나는 북·미 양국 간의 중재역할에서 한국이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미국이 한국을 대북 중재자로서 배척한 이유는 간단했다. 작년 6월 1차 북·미회담 종결 후 우리 정부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남북경협을 위한 대북 제재 완화를 성급하게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부는 7월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가을에는 UN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국가들, 그리고 겨울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에 제재 완화 협조를 요청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문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성급한 어불성설식의 요청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월부터 미국은 경색국면을 겪고 있던 북·미 고위급회담의 돌파구를 중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다. 미·중 간의 무역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트럼프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한 셈이 되었다.
2차 북·미회담이 성과가 있었으면 중국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는 북·미·중 3국간의 협의체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우리의 역할은 사장되었을 것이 자명했다. 그런데 이번 회담의 결렬로 우리에게 중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중하는 겸허한 자세로 과거의 과오와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중재자 역할에 충실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대북접근 방식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보다 이성적이며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와 태도로 이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 비핵화를 제대로 중재하고 남북경협을 위한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용단을 정부가 반드시 내려야 할 것이다. 첫째, 감성팔이에 빠져 보여주기 식의 쇼의 늪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와야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만을 맹신하면서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를 국제사회가 맹목적으로 수용할 것을 중재하는 역할은 금물이다. 이런 식의 요구가 설득력이 없음을 작년 하반기에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비핵화에 상응한 대가 조치인 제재 완화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즉, 제재 완화는 비핵화의 실천을 담보한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비핵화의 정확한 의미와 개념을 북한에 반드시 전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과 전례에 없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빈번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의제는 당연히 비핵화와 경제제재완화였다. 그런데 우리 통일부장관은 지난 1월 9일 아직도 북한의 비핵화 개념이 우리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우리의 개념을 북한 측에 제대로 전하고 북한을 제대로 설득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수차례의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과 비핵화 개념의 간극 격차를 왜 줄이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2차 북·미회담을 앞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은 그야말로 혈세 낭비와 직무유기를 자백하는 것 같아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만의 중재 원칙이 필요하다. 우리의 역할이 북한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반쪽짜리가 아닌 미국과 국제사회의 것을 북한에도 명확히 전하는 쌍방향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모두 아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더 이상 북한의 눈치를 보는 행동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의 눈치를 보다 못해 북한에 쓴소리를 스스로 자제하는 저자세를 보였다. 이런 저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만의 중재 원칙의 확립이 이제 필요하다. 원칙 없는 중재는 전략의 부존을 의미한다. 전략의 부존은 설득력의 부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중재는 사실을 가지고 법과 규범에 근거해 유책 여부를 따져 타협과 합의를 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일이다.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당한 중재를 위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측은지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지난 15개월 동안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라는 것에 동조하면 안 된다. 지난 15개월 동안 모범수가 아닌 25년 동안 무법자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수많은 합의와 약속을 통해 핵 포기 의사와 핵 시설 폐기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과 실험은 끊이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북한은 세상을 기만하는 중죄를 저질렀다. 조약을 폐기하고 국제기구의 탈퇴도 마다하지 않았다. UN 결의안은 무시했다. 이런 북한에 사면은 시기상조다.
북한은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중재 기회가 우리에게 부여됐다. 미국의 대선 등 국내정치일정 상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제재 해제 범위의 요구가 전부였든 일부였든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북핵시설 폐기의 범위도 중요하지 않다. 북·미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북·미를 서로 설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3자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는 호기다. 정부가 원하는 우리 주도의 평화 정착이 실행 가능한 마지막 기회다. 이제 우리 정부의 용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