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해운재건…자금줄만 보다간 '골든타임' 놓친다

2019-02-26 02:00
정부, 해운관련 자금 지원 외 뚜렷한 정책 없어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퇴진 등 문제 '수면위'
선사ㆍ협력ㆍ전문경영인 등 중장기 접근 필요

현대상선 컨테이너 선. [사진=현대상선 제공]


정부가 지난해 4월 내놓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는 4월 정책 발표 1년이 되는 시점에도 자금 지원 이외에 눈에 띄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업은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찬밥 신세다. 정부가 2023년까지 현대상선에 5조원 안팎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음에도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와 업계 모두 파격적인 대안이 없으면 지금의 정책으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퇴진을 공식화한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의 행보도 정부 정책이 예상보다 엇나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아직 잔여 임기가 2년여 남았음에도 조기 퇴진하는 배경에는 더 이상 자원 지원만으로 해운업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유 사장의 퇴진으로 정부 해운정책도 노선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결정이 관건인데, 정부가 채권단과 공조해 지원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문제는 정부 입장에서 정책 노선을 변경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해운재건 정책을 '자금 지원'이라는 프레임으로 짜놨기 때문에 다른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기가 쉽지 않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재건 정책이 시장 상황 인식이나 정확한 판단 없이 붕 떠 있고 흔들리다 보니 금융정책에 밀렸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의 사의 표명도 이 같은 맥락"이라며 "이는 결국 글로벌 화주들, 글로벌 시장에서는 또 다른 한진 사태로 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시장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자금 지원 외에 국내 해운업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글로벌 선사들은 독자적으로 세계 모든 지역에서 선박을 운영하거나 영업하기 어렵기 때문에 얼라이언스를 구성해 다른 선사와 함께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량이 중요한 해운업 특성상 규모를 키워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해운업계의 경우 한진해운 사태 이후 NYK·MOL·K Line 등 일본 3대 해운사가 '원(ONE)'이라는 통합 법인을 구축했다. ONE은 한·중·일 항로를 비롯해 동남아항로 경쟁에도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고병욱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부연구위원은 "2016년 한진해운 사태 당시 세계적인 추세가 대형화였고, 국내에서도 국책 선사간 협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수출이 기간 인프라 산업인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수출 경쟁력을 위해서도 해운산업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부연구위원은 이어 "해운사들은 민간 기업으로 협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 마련은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머스크 등 해운업계 출신 해외 전문경영인 도입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해운업계의 학연·지연을 벗어던지기 위한 초강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이 어렵다고 하는데 아직도 관행적인 행태가 남아 있다. 자신들 영역을 지키는 데 안주하면 해외 선사들과 경쟁이 어렵다. 현재 해운업은 1990년대 황금기가 아니다"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업계가 자성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단시일 내 성과보다는 좀 더 중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글로벌 해운시장이 특정인의 경영수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 해운업이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 특히 화주들이 그렇다"라며 "그럼에도 우리 해운업은 여전히 정치, 경영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한진 파산처럼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정부의 입장이 뚜렷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25일 해운재건 5개년 계획 성과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해 중소선사 32곳에 총 7301억원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올해 전체 해운업에 2조714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