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안고 가는 동남아...美주도 反화웨이 전선 균열
2019-02-20 14:52
동남아, 5G 사업에서 화웨이 장비 선호
화웨이 기술력·가격·투자·서비스에서 강점
美 유럽 주요 우방도 反화웨이 이탈 조짐
화웨이 기술력·가격·투자·서비스에서 강점
美 유럽 주요 우방도 反화웨이 이탈 조짐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중국 화웨이가 미국 주도의 보이콧(불매) 운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면 국가 안보가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차세대 이동통신 5G 네트워크 구축에 나선 동남아 주요국들은 여전히 화웨이 장비를 선호한다. 화웨이는 투자와 기술력,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동남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미국의 반(反)화웨이 공세에 맞서고 있다.
◆동남아 화웨이 확장은 진행형
태국은 이달 앞서 5G 실험기지(test-bed)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화웨이와 세계 3강 구도를 형성하는 노키아와 에릭슨도 포함됐으나, 동남아 국가 중 태국이 처음으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5G 실험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태국이 2020년 5G 전국 상용화를 목표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화웨이는 어드밴스드인포서비스 및 트루 등 현지 통신사와 5G 장비 공급 계약을 맺기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화웨이는 베트남 5G 수주전에도 뛰어들었다. 파인 판 화웨이 베트남 지사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 인터뷰에서 “화웨이가 베트남 통신사에 5G 장비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베트남 5G 시장 선점을 자신했다. 이미 화웨이는 현지 파트너들과 연내 있을 5G 네트워크 시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역시 5G 실험에서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예정이며, 높은 시장 잠재력으로 주목받는 인도 역시 지난해 5G 실험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인도는 구체적인 5G 실험 계획을 밝히지 않았으나, 제이 첸 화웨이 인도 지사장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인도에서 화웨이 장비와 관련해 그 어떤 문제도 보고받은 바가 없다"면서 5G 수주전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업계 관측통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아직까지 가격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화웨이를 능가할 경쟁자가 없다고 말한다. 고객에게 제공되는 기술 면에서 화웨이는 경쟁업체보다 1년가량 앞선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라고 BBC는 전했다.
화웨이는 미국 등 주요국이 선점 경쟁을 벌이는 5G 기술의 선두업체다. 화웨이가 보유한 5G 특허는 2570건으로 경쟁업체인 중국 ZTE, 미국 퀄컴, 인텔 등을 크게 앞선다. 세계 통신장비 점유율은 30%로 압도적인 1위다. 최근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이 B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으며 세계는 우리를 버릴 수 없다”고 단언한 것도 자사 기술력에 대한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화웨이를 보이콧하면 5G 경쟁 레이스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격 경쟁력에서도 화웨이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는 여타 경쟁업체에 비해 10%가량 낮은 가격에 통신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화웨이는 서방 기업들이 주력 시장 목록에서 제외했던 동남아 시장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지금까지 서방 경쟁업체들이 미국, 중국, 유럽 등 거대 시장에 힘을 쏟으면서 동남아 시장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했다면 화웨이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례로 태국이 군사쿠데타 후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고전하는 동안 화웨이는 태국의 첨단산업 경제특구인 동부경제회랑(EEC)에 2250만 달러(약 252억원)을 들여 대규모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닷컴 역시 EEC에 투자를 약속하면서 현지에서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에 일조했다. 또한 화웨이는 동남아 시장에 고객지원 네트워크를 마련하면서 서방 기업들의 약점인 애프터서비스에서 많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그외에도 중국이 일대일로(육·해상 신 실크로드) 사업의 일환으로 동남아에 경제적 입김을 강화하고 있어 화웨이를 배제할 경우 경제적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화웨이 퇴출에 주저하는 것도 동유럽 큰손 투자자로 부상한 중국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美 주도 反화웨이 전선 균열
동남아가 화웨이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미국이 주도하던 반화웨이 전선은 균열 조짐이 뚜렷하다. 지금까지 미국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였던 영국, 뉴질랜드, 독일이 잇따라 5G 네트워크 장비 공급 후보에서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미국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화웨이 보이콧을 이끌었다. 화웨이 장비를 통해 수집된 각종 정보가 중국 정부로 흘러들어가거나 화웨이 장비가 중국 정부의 사이버공격에 활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화웨이를 쓰는 나라와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며 편가르기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은 또 지난해 12월 멍 부회장을 캐나다 당국을 통해 체포했고 최근에는 미국 법무부가 화웨이와 멍 부회장 등을 기술절취, 금융사기, 대이란 제재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압박 강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중 미국 기업의 중국산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의 안마당 동남아는 둘째치고 미국이 그간 설득에 힘써온 유럽에서까지 화웨이 수용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는 급제동이 걸리게 생겼다. 게다가 미국과 안보기밀을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Five-eyes)' 일원인 영국과 뉴질랜드가 반화웨이 대열에서 이탈을 신호했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의 화웨이 퇴출 운동은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의 에드워드 앨든 선임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에 “만약 영국과 독일이 반화웨이 전선에서 이탈할 경우 화웨이가 안보에 위협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은 무색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캐나다 역시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