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유치권 성립요건 고찰
2019-02-02 09:00
견련성에 대하여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1다96208 판결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1다96208 판결
1. 들어가며
최근 유치권 관련하여 흥미로운 상담을 하였다.
기존 공장 건물을 일부 철거하고 가스충전소를 설치하여 동업으로 가스충전소를 운영하기로 하고, 그 동업약정에 따라 기존 건물 철거 및 신축 공사에 필요한 공사대금 중 일부금인 2억원을 투자하였다. 그런데 자금 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나아가 공사를 주도한 동업자가 공사를 중단한 채 도주를 하였다. 어쩔 수 없이 투자한 2억원 채권에 기해 부동산을 점유하며 유치권행사를 하고 있는데, 경매로 위 부동산을 낙찰 받은 새로운 경락인이 자신에게 부동산 인도 명령 신청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의뢰인은 위와 같이 유치권에 기하여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으니, 경락인의 부동산 인도명령에 대항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였다.
유치권이란, 타인의 물건,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해당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대해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 해당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민법상 유치권 - 민법 제320조 제1항).
따라서 또 다른 채권자가 목적물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하여 경락인이 경락을 받더라도 유치권자는 그 경락인에 대하여도 자신의 채권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목적물의 인도를 거절할 수 있게 된다. 실질적으로 우선변제를 받게 되는 강력한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유치권의 성립 요건은 ‘① 타인 소유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일 것 ② 목적물을 적법하게 점유해야 할 것 ③ 채권의 경우 변제기에 도래할 것 ④ 유치권 배제특약이 없어야 할 것 ⑤ 채권과 목적물 사이에 견련관계가 있을 것’이다. 위 요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실제 자신의 돈이 공사에 투입되었더라도, 또한 공사비가 수십억이 넘게 소요되었더라도 유치권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
실무에서 주로 문제되는 요건상 쟁점은 아무래도 ‘채권과 목적물 사이의 견련관계(채권이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일 것)’이다.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이라는 의미가 다소 어려운데, 실제 소송에서도 그 판단이 무척 어렵다.
아래 대법원 판례는 견련성에 관하여 유념할 만한 판시를 한 사안이다.
2. 사실 관계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2004. 7. 5. 소외 주식회사 A사 앞으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졌고, 그 후 2005. 2. 15. 강제경매가 개시되어 2005. 2. 17. 경매개시결정 기입등기가 이루어졌으며, 2005. 3. 8. 임의경매가 개시되어 위 두 경매사건이 병합되어 진행된 끝에, 2010. 5. 6. 원고가 낙찰대금을 납부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피고는 A사로부터 B사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를 도급 받은 소외 주식회사 B사와의 약정에 따라 2003. 4. 1.부터 2004. 7.경까지 위 공사 현장에 시멘트와 모래 등 건축자재를 공급하였는데, 원사업자인 B사가 2회분 이상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여 그 잔액이 136,384,293원에 달하였는바, 피고는 발주자인 A사를 상대로 부산지방법원 2005가합20708호로 그 대금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2007. 9. 20. “A사는 피고에게 136,384,293원 및 이에 대하여 2005. 11. 26.부터 2007. 9. 20.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 받았고, 그 무렵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
한편 피고는 A사의 대표이사이자 B사의 사실상 대표이사인 소외 1의 승낙을 받아 위 신축된 건물 중 이 사건 부동산에 2004년 말경부터 거주하여 왔고(처인 소외 2가 2004. 10. 7., 자신은 2005. 1. 20. 각 전입신고를 하였다), 2005. 3. 10.경 다른 공사업자들과 함께 이 사건 부동산을 비롯한 위 신축 건물의 각 호실에 대하여 유치권 신고를 하였다.
소외 C은행으로부터 A사에 대한 대출채권을 이전 받은 소외 주식회사 D금융공사는 부산지방법원 2006가합20453호로 A사와 B사 등에 대해서는 양수금을 청구하고 피고를 비롯한 유치권 신고자들을 상대로는 각 신고된 유치권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2008. 9. 17. 피고에 대해서는 “피고의 이 사건 부동산을 제외한 나머지 각 부동산에 대한 유치권은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하고 나머지 청구를 기각”하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받았고, 위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원고는, “피고의 공사대금 채권과 이 사건 부동산의 점유 사이에 견련관계가 없어서 유치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부동산의 인도”를 구하였다(다른 주장은 생략).
1심 재판부는 “피고가 B사와의 약정에 따라 B사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 현장에 시멘트와 모래 등 건축자재를 공급하였고 그 잔여 공사대금이 136,384,293원에 달한 사실, 이에 피고는 2004년 말경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 현재까지 위 신축된 건물 중 이 사건 부동산에 거주하여 온 사실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은바,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의 위 공사대금 채권은 위 건물 신축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납품하여 발생한 것으로서 그 납품한 자재들이 이 사건 부동산의 구성부분에 부합되었다 할 것이므로, 위 채권과 이 사건 부동산 사이에 견련성이 인정되어 피고는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위 공사대금 채권을 담보로 하는 유치권을 가진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면서 유치권 성립을 인정하였다.
2심 재판부 역시 “민법 제320조 제1항에서 규정한 ‘그 물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은 유치권 제도 본래의 취지인 공평의 원칙에 특별히 반하지 않는 한 채권이 목적물 자체로부터 발생한 경우는 물론이고 채권이 목적물의 반환청구권과 동일한 법률관계나 사실관계로부터 발생한 경우를 포함하는 것인바, 피고가 이 사건 부동산의 신축공사에 필요한 자재인 시멘트와 모래 등을 공급하였고, 위 공사자재들이 공사에 사용되어 이 사건 부동산의 구성부분으로 부합된 이상, 위 건축자재대금채권은 이 사건 부동산과의 견련관계가 인정되어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유치권의 피담보채권이 된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역시 유치권 성립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결론이 바뀌었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3. 판결 요지
민법 제320조 제1항은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는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유치권의 피담보채권은 ‘그 물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어야 한다.
그런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피고는 위 건물 신축공사의 수급인인 B사와의 약정에 따라 그 공사현장에 시멘트와 모래 등의 건축자재를 공급하였을 뿐이라는 것인바, 그렇다면 이러한 피고의 건축자재대금채권은 그 건축자재를 공급받은 B사와의 매매계약에 따른 매매대금채권에 불과한 것이고, 피고가 공급한 건축자재가 수급인 등에 의해 위 건물의 신축공사에 사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위 건물에 부합되었다고 하여도 건축자재의 공급으로 인한 매매대금채권이 위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의 건축자재대금채권이 이 사건 아파트와 견련관계가 인정되어 이 사건 아파트에 관한 유치권의 피담보채권이 된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판결은 유치권의 성립요건인 채권과 물건 간의 견련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4.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피고의 건축자재대금채권은 자재를 공급받은 업체와의 매매계약에 따른 채권에 불과하여 이 건축자재 매매대금채권은 건물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여 견련성을 부정하였다.
설령 피고가 공급한 건축자재가 수급인에 의하여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에 사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건물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건축자재대금채권은 매매계약에 따른 매매대금 채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면 수급인이 실제 공사를 시공한 경우 그 공사대금채권에 대하여는 견련성을 인정하고 있다. 가령, 신축공사의 여러 공정 중 토목, 골조, 창호나 유리창, 미장, 방수, 기타 시공 부분에 관한 공정은 주로 외부업체에 맡기게 되는데, 그럴 경우 그 업체가 재료를 납품하여 시공까지 마친 경우에 그 공사대금채권은 건물에 관하여 생긴 채권으로 보아 유치권 성립을 인정하고 있다.
요컨대 대법원은 건물 건축공사에 있어 ‘유치 대상 건물과 채권의 견련관계’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우선변제라는 막강한 힘을 지닌 유치권의 성립을 제한하고 있다. 유치권은 법률상 당연히 성립하는 법정 담보물건으로 당사자 사이에 합의를 요하는 것도 아니고 점유만으로 성립하기 때문에 등기와 같은 별도의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외부에 공시되지 않기 때문에 유치권의 무분별한 행사를 견제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유치권자(공사업체)가 제공한 노무나 자재, 금원, 기술 등이 실제 건물에 투입되었고 건물의 가치 증대에 본질적인 기여를 하였다면 그 채권은 본질적으로는 건물에 관하여 생긴 채권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채권 성립에 관한 계약의 형식이나 공사의 방식 등에 치중하여 견련성을 판단하는 것은 현행 건축공사에 있어서 하도급인들의 처우나 지위, 공사 여건 등에 비추어 다소 공사업체들에게 불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공사 부도 시 공사업체들이 채권을 회수할 방법은 실로 막연하다.
5. 나가며
이러한 취지에서, 필자가 상담한 사건에 관하여도 동업약정에 따라 투자한 2억원이 실제 공사에 투입되었고 건물 가치 증대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것이라면, 부당한 손실을 막기 위해 견련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물론 유치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면 사실상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어서 담보물권의 기본 법리를 훼손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유치권의 본래 취지는 물건의 가치 상승에 있어서 부당한 이익 또는 부당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목적물의 경매에 임하는 경락인은 이러한 사정들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어서 불측의 손해를 방지할 기회가 존재한다.
견련성의 범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유치권의 취지를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공평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인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