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③ 규제에 발목잡힌 한국...과실은 동남아가 먹는다

2019-01-09 16:29
​[동남아에 부는 4차산업혁명 바람...한국, 또 낙오하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을 마주보고 있는 사자 조각상.[사진=연합뉴스 제공]


암호화폐 규제에 가로막혀 성장이 주춤했던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이 ‘블록체인 허브’ 동남아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주요 동남아 국가들이 정부 주도로 블록체인 산업을 활성화 하며 적극적으로 해외기업들을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 등 해외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미얀마,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브루나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10여개국이 암호화폐 통화법을 제정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는 등 블록체인 관련 산업 활성화에 적극 나섰다.

싱가포르는 아시아권 국가에서 유일하게 ICO(암호화폐 공개)를 합법화하며 규제압박이 심한 중국과 한국 블록체인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 최대 IT기업 카카오는 싱가포르에서 특수목적 법인 ‘KLAYTN'을,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은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를 싱가포르에서 개소했다.

인도네시아도 국내 기업의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블록체인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먼스케이프는 지난해 의료 서비스 수요가 높은 인도네시아에 현지법인을 설립, 환자데이터 구축 사업과 함께 암호화폐 휴먼토큰도 발행하고 있다. 국내 블록체인 1세대 글로스퍼는 지난해 필리핀에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빌’을 개소했다.

IT기술과 금융 인프라가 미약한 우즈베키스탄도 블록체인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정부 주도로 ICO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블록체인 기업 및 협회가 현지 자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 ICO를 제도화 하는 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올해 블록체인 관련 예산은 319억원으로 지난해(87억원)보다 무려 3.7배 대폭 늘렸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와 분리될 수 없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을 육성하는 정책 기조와 대비되는 엇박자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동남아의 경우 정부가 기술 개발보다는 ICO 등 투자 환경 조성을 통해 해외기업을 유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와 달리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은 있지만 비즈니스 수익 모델을 실현할 제도적 환경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제 완화로 인한 후속 피해의 책임을 정부가 안고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정부가 암호화폐를 디지털자산으로 인정하고, 협회 등에 세부적인 자율적 규제안을 받아보는 방식으로 민·관 공동 규제를 통해 산업 진흥의 기회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