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넘보는 동남아…싱가포르·태국·베트남도 기술허브 경쟁

2019-01-07 16:12
[특별 기획 : 동남아, 4차산업혁명 바람...한국 또 낙오하나]
②싱가포르·태국 등 정부 규제개혁 '4차 산업혁명' 가속

[사진=신화통신]


미국을 기반으로 성장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 타이거(Taiger)는 2014년 싱가포르에 새 둥지를 틀었다. 싱가포르 정부 사업을 순차적으로 따내면서 2016년에는 아예 법인을 싱가포르로 옮겼다. 작년에는 싱가포르 정부 산하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SG이노베이트(SGInnovate)가 현지 사모투자 회사인 템부스파트너스(Tembusu Partners)와 함께 타이거에 투자했다. 타이거는 현재 싱가포르 정부의 AI 전략을 이끄는 조언가이자 AIA그룹, 산탄데르 은행 등 글로업 대기업들의 파트너사로 활약하고 있다. 

◆인큐베이팅·감세 혜택 등 국가 주도 전방위 지원 

외국 기업인 타이거가 주변의 우려를 딛고 싱가포르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배경에는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에 대한 감세 혜택으로 유명하다. 주식형 펀드와 우선 대출권, 연구개발(R&D) 지원 등에 관한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능력 있는 외국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개방적인 이민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에는 싱가포르국립대학 주도로 산업용 건물을 개조해 '블록 71(Block 71)'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7개 동으로 구성된 블록 71에는 250개의 스타트업과 30개의 창업보육센터, 스타트업에 돈을 대는 벤처캐피털업체가 상주한다. 싱가포르기업청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수는 2003년 2800곳에서 2016년에는 4300곳으로 증가했다. 벤처 투자 규모도 2010년 8000만 달러에서 2017년 12억 달러로 급증했다.

싱가포르가 정부의 지원 공세로 아시아에서 중국, 인도 다음 가는 기술허브로 떠오르자 주변국들의 추격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를 역내 최대 디지털 경제권으로 키우는 걸 주요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 2017년에는 벤처 인큐베이팅부터 보조금 제공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스타트업 지원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저금리 은행 대출을 제공하고, 연간 매출액 48억 루피아(약 4억원) 이하인 스타트업에 대한 과세 절차도 간소화했다. 2020년까지 100억 달러를 투자해 1000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덕분에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디지털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벤처캐피털 투자가 활발하다. 다국적 컨설팅업체 AT커니와 구글에 따르면 2016년 인도네시아에서는 123건, 총 14억 달러의 투자가 이뤄졌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늘어난 것으로 증가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4개의 '유니콘(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 말레이시아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최대 10년간 세금을 면제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후발주자 태국·베트남은 우수 인력 유치 총력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가 국가 차원의 전방위 지원을 한다면 후발주자격인 태국과 베트남은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태국 정부는 더 많은 스타트업의 진출을 유도하기 위해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다. 노동집약적이었던 국가 산업을 지식 기반의 기술지향적으로 전환하는 디지털 경제 전략, 이른바 '태국 4.0' 정책에 따른 것이다.

태국은 우선 내년 초까지 '태국 신생기업법(Thai Startup Act)' 등 세 가지 법안을 제정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진출 문턱을 낮춰 외국인도 태국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스타트업을 설립할 때 반드시 태국인 동업자를 동반해야 한다는 조항이 사라진다. 벤처캐피털의 투자 지분 제한도 49% 이내에서 100%로 완전히 풀린다.

베트남의 스타트업 환경은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 등 경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지만,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하노이, 다낭, 호찌민 등 주요 도시 세 곳에 '하이테크 파크'를 마련한 게 베트남 정부의 적극성을 방증한다. 

호찌민에 있는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에는 이미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 같은 세계 굴지의 기술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곳에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보육센터를 짓고 있다. 여기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기술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베트남 정부는 암호화폐 규제에 강경한 입장이지만, 아직 규제 제도를 마련하지 않아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낙관론이 남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자매지인 닛케이아시안리뷰(NAR)에 따르면 베트남 내 블록체인 분야 인력은 작년 기준 2000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해외에서 공부를 마친 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에서 앱과 금융서비스 등을 개발한 경험을 갖고 있어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기술 관련 매체인 테크소스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2017년에만 약 3000곳의 스타트업이 신규 창업했고, 92개 스타트업에만 2억9000만 달러가 투자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픽=임이슬기자 90606a@]


◆'제2의 실리콘밸리' 기대감..."2024년까지 유니콘 10개 더" 

동남아가 '제2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이미 투자업계에 퍼져 있다. 동남아 주요국의 매력으로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단일 무역기구를 기반으로 한 시장 잠재력 △고도 성장에 따른 중산층 증가 △젊은 인구를 기반으로 한 QR 코드 결제 등 디지털 트렌드 확장 등이 꼽힌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전체 인구가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약 2억6000만명에 달한다. 더 주목할 건 인구 10명 중 6명이 4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라는 점이다. 2020년에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7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 기반 금융정보 업체인 RFi그룹에 따르면 작년 1분기 아시아 내 QR 코드 결제 비율은 중국이 70%로 가장 높았다. 인도와 베트남이 각각 40%, 27%로 그 뒤를 이었다.

여기에다 규제를 철폐하고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려는 각 정부의 이니셔티브가 다양화하면서 벤처캐피털 모금과 창업센터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기업가별 매칭펀드에 1달러당 최대 3만 달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스타트업 SG 파운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가 하면. 싱가포르통화국의 단계별 스타트업 지원 승인 간소화로 스타트업 수를 늘렸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과 구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현재 500억 달러 수준인 동남아 인터넷 경제 규모가 2025년까지 4배로 확장될 전망이다. 특히 향후 5년간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핀테크 기업에 대한 평가와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섬이 많은 지정학적 특성에다, 동남아 내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짐에 따라 핀테크와 전자상거래 산업에 큰 잠재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4년까지 최소 2~3개의 핀테크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다고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는 내다봤다. 

동남아 기반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베인앤컴퍼니가 작년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그랩, 고젝, 트레블로카 등 동남아에서 탄생한 10대 유니콘의 투자 가치는 총 340억 달러에 이른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 인도에 이은 세 번째 규모다. 
 
2017년 기준 역내 벤처캐피털 거래 건수는 2012년의 4배인 524건으로 증가했다. 사모펀드 거래액은 75% 증가한 150억 달러로 10년간 정체됐던 증가세에 다시 힘이 실렸다. 거래가가 1000만 달러 이상인 사모펀드 거래를 마친 투자자 수는 2017년 124명으로 지난 5년 평균치에 비해 45% 증가했다. 초창기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이들이 이익을 보며 빠져 나오고 그 자리를 사모펀드가 대거 메우고 있는 셈이다. 투자 매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말이다. 

베인앤컴퍼니는 동남아의 유니콘은 현재 10곳에 불과하지만, 오는 2024년까지 최소 10곳이 더 탄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 지역 유니콘의 기업 가치도 5년 뒤에는 지금의 두 배인 7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