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街 뉴리더] 신동빈① 신동주와 경영권 분쟁·국정농단 연루…8개월 공백 깨고 미래로
2019-01-07 06:42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차남, 88년부터 경영수업…90년 롯데케미칼 상무로 재계 등장
2015년부터 친형과 경영권 분쟁…‘총수일가 경영비리·뇌물공여 혐의’ 악재 잇달아
2015년부터 친형과 경영권 분쟁…‘총수일가 경영비리·뇌물공여 혐의’ 악재 잇달아
유통가 수장들은 올해 그 어느 때 보다 ‘혁신’에 나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경제 성장률 둔화, 청년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내수 소비가 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할 방도로 기업 혁신을 꼽은 것이다. 주요 유통 대기업들은 앞다퉈 세대 교체를 통해 ‘자기 혁신’에 힘쓰고 있다. 성장의 초석을 다진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를 넘어 아들, 손자 세대로 이어지는 유통가 ‘뉴리더’의 경영 비전을 릴레이로 다룬다. <편집자주>
롯데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유통 명가’로 불린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롯데 껌’을 성공시키면서 자본을 축적한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롯데그룹을 일으킨 성공스토리는 ‘롯데맨(롯데 임직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신 명예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 회장은 자수성가한 아버지 밑에서 조용하면서도 다부지게 경영수업을 해온 인물이다.
1955년 2월14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한 신동빈 회장은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뒤,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첫 사회생활은 1981년 롯데가 아닌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시작해 7년간 영국지사에서 근무했다. ‘롯데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사회 초년생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 방침에 따른 것으로, 신 회장의 아들 신유열씨도 현재 노무라증권에서 근무 중이다.
신 회장은 이후 1988년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입사한 뒤,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임명되면서 한국 재계에 공식적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이후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2004년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2011년 2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2세대 오너로서 착실히 입지를 다져온 신 회장은 2015년 1월 친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린 2년여간의 경영권 다툼 끝에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승리하면서 그룹의 지배력은 공고해졌지만, 신 회장 또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된다.
롯데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에 그간 신 전 부회장이 제동을 걸면서 분란을 일으킨 데다,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는 일본 기업’ ‘거미줄 같은 순환출자 고리’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닌 것이다.
그 와중에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특허권이 날아가고 2017년 2월에는 사드 부지 제공에 따른 중국 정부의 ‘롯데 불매운동’까지 겹쳐 면세사업은 한층 위기를 맞게 된다.
가장 큰 위기는 2016년 신동빈 회장과 롯데 총수 일가 모두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다. 4개월간 검찰의 압수수색, 신 회장에 대한 불구속기소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전 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동빈 회장은 두번이나 그의 빈소를 찾는 등 당시 애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 신 회장은 그해 10월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검찰수사로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고 지주사 설립·순환출자 해소 등 경영혁신안을 발표, ‘뉴롯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엔 신 회장이 또다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되는 악재가 이어졌다. 그룹 횡령배임과 배임혐의는 2017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으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는 2018년 2월,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돼 신 회장이 법정구속되고 말았다.
롯데는 갑작스런 오너 구속에 당황하면서도, 황각규 부회장 중심의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했다. 이후 약 8개월 가까이 회장이 없는 ‘총수 부재’ 상황이 이어졌다. 이 기간 롯데는 10조원이 넘는 대규모 해외투자와 호텔롯데 상장 등 지배구조 차질을 빚었고 인재 채용도 올스톱 됐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