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여행지-겨울]강릉 대기리마을,"해발 700m서 즐기는 얼음썰매·시래기밥과 한 서린 돌탑 3000개"
2019-01-03 08:53
바로 먹을 수 있는 물 흐르는 계곡과 울창한 산세 간직한 고원마을
강릉 대기리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있다. 넓이는 2453만㎡다. 이 중 밭이 453만㎡, 임야가 2000만㎡다. 가구는 223가구, 인구는 382명이다.
대기리는 본래 강릉시 구정면 지역을 의미했다. 1916년 여러 지역을 병합해 ‘대기리’라 이름지어졌고 구정면에 편입됐다가 이후 강릉시 왕산면에 편입됐다. 처음 3개의 리로 구성돼 있었으나 1961년 고루포기산 중턱을 개간해 고랭지 채소를 심으면서 ‘안반데기’라는 마을이 새로 생겨 4리가 됐다.
그러던 것이 지방도와 국도의 확충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현재 강릉 대기리마을은 누구나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됐다.
강릉 대기리마을을 가려면 지금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다. 2018년 12월 28일부터 2019년 1월 말까지 주말엔 ‘겨울잔치’가 진행되기 때문. 평일에는 잔치가 없다.
폐교된 대기초등학교 운동장에 밤새 물을 끌어다 얼려서 얼음썰매장을 만들었다. 운동장 옆에는 눈썰매장도 있다.
운동장 옆 비닐하우스에선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먹거리 장터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운다. 감자전, 시래기밥, 시래기김밥 등 강릉 대기리마을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만든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을 수 있다.
◆1월 말까지 주말에 ‘겨울잔치’ 진행
비닐하우스에선 제기차기, 밤 구워 먹기 등을 할 수 있다. 숯불 화로에서 구워 먹는 농산물과 한과, 달고나 등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시골의 맛’을 알게 한다.
1리에 속한 노추산은 해발 1322m다. 노추산이라는 이름은 노나라 노자에 추나라 추자를 합친 이름으로 노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인 공자와 추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인 맹자의 뜻을 기려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노추산에서 신라시대 설총과 조선시대 율곡 이이가 학문을 연마해 대성했다. 산 중턱에는 이성대(二聖臺)라는 2층 목조 건물이 있다. 1층에는 사람들이 거처하고 2층에는 설총과 이이의 위패가 있다.
건물 앞 바위에는 설총과 이이의 글씨가 아로새겨져 있다. 근처에는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샘터도 있다.
이성대 앞쪽에선 구곡천이 흐르고 주변에는 철쭉과 기암괴석이 있어 아늑하고 신성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노추산에는 야생화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산행하면 애기날, 용담, 참좁쌀풀 등의 야생화들을 볼 수 있다. 노추산 등반 소요시간은 2∼3시간 정도다.
노추산에는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배나드리길을 따라 달려서 10여 분이면 노추산 초입인 ‘노추산 모정탑길’에 도착한다. 3000여 개의 돌탑에 대한 사연은 전설 같은 실화다.
사연의 주인공은 26년 동안 돌을 날라 쌓아 올린 고(故) 차순옥 여사. 68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돌을 지게에 지고 다녔던 이 길이 바로 ‘노추산 모정탑길’이다. 이 여인의 인생은 매우 기구하다.
나이 스물셋에 강릉으로 시집와 아들 둘을 잃었다. 남편은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산신이 나타나 “노추산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우환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1986년부터 2011년까지 홀로 산속에 기거하며 돌탑을 쌓았다. 이 이야기는 2013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지나가는 등산객도 함께 탑을 쌓기도 했다.
차순옥 여사가 기거했던 굴피 움막에는 돌을 날랐던 지게와 지팡이, 혼자 군불을 때고 밥을 지어 먹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차 여사는 이곳에서 생활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주민들과 왕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움막 근처 돌탑 곳곳에는 검은 펜으로 글씨가 쓰여 있다. 쓰인 글씨는 차 여사가 도움받은 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다. 노추산 모정돌탑 공원에는 소원우체통이 있다. 원하는 날짜에 편지를 배달해 준다.
◆3000여 개의 돌탑에 대한 사연은 전설 같은 실화
노추산산림욕장은 3리에 속한 노추산 자락에 조성돼 있다.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강릉 대기리마을에서 자연 해설판을 설치했다.
소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자작나무 등이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부추, 올괴불나무, 투구꽃, 하늘말나리, 병조희풀 등의 야생화도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산림욕장 안을 걷다 보면 사람의 손길로 정성스레 쌓은 돌탑들과 바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시원한 계곡을 만날 수 있다. 노추산을 오를 수 있는 등산로 입구에도 도착할 수 있다.
3리의 구절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노추산산림욕장이 나오고 여기서 약 400m 아래 오른쪽 계곡으로 가면 바로 발왕산탐방로 입구다.
발왕산(1458m)은 용평스키장의 남쪽에 있다. 1급수의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떨어지는 폭포와 용담, 배초향, 까치수염, 투구꽃 등의 다양한 야생화가 있다. 등산 소요 시간은 등산로에 따라서 1∼4시간 정도다.
발왕산에는 전설이 있다. 한 고을에 발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발왕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다. 발왕이는 몸집이 너무 커 결혼을 못 하고 있다가 우연히 옥녀란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돼 결혼까지 약속했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떠난 발왕이는 제왕고개를 넘던 중 산적질을 하다가 포졸들에게 잡혀 맞아 죽었다. 이를 모르는 옥녀는 기다림에 지쳐 죽었고 죽은 옥녀가 묻힌 봉우리가 바로 발왕산 건너편에 있는 옥녀봉이라고 한다. 발왕산이라는 이름도 역시 이 전설에서 연유됐다고 한다.
닭목령에서 2리에 있는 벌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감자원종장 앞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4km 정도 올라가면 피덕령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산비탈이 온통 밭으로 된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의 이름이 ‘안반데기’다.
안반데기는 해발 1200m에 자리한 고랭지 배추밭이다. 1960년대 화전민들이 고루포기산 중턱의 척박한 땅을 일궈 배추를 심었다. 화전민은 수십m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가파른 비탈에서 곡괭이와 삽만으로 밭을 일궜다. 1995년에는 대를 이어 밭을 갈아 낸 28가구의 안반데기 주민들이 정식으로 매입해 실질적인 소유주가 됐다. 척박한 땅은 약 200만㎡에 이르는 풍요로운 밭으로 변했다. 우리나라 고랭지 채소단지로는 제일 넓은 곳이다.
밭에서 골라낸 돌을 날라 벽을 쌓고 전망대로 만든 곳이 ‘멍에 전망대’다. ‘멍에’는 쟁기질을 하기 위해 소의 목에 거는 막대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전망대로 오르는 길을 걸으면 강릉 시가지와 동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가다 돌아보면 발왕산, 고루포기산,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봄에는 푸르른 호밀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배추 농사가 한창인 여름에는 감자꽃과 고랭지 채소가 가파른 산턱을 뒤덮는다. 가을에는 하늘과 맞닿은 고산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 겨울에는 배추가 뽑혀 나간 땅에 한 폭의 수묵화를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안반데기는 4리 중심마을이다. 마을이 고루포기산 중턱에 있어 다른 곳보다 높은 언덕이 되고 멀리 내려다보인다.
안반데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맑은 날이면 멀리 강릉 시내와 바다를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
강릉 대기리마을 여행 후에는 마을 안에 있는 황토방에서 피로를 풀고 펜션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