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진 칼럼] 베이징과 신장에서 살펴본 중국의 일대일로

2018-11-28 03:30
'서진'으로 이해되던 일대일로 달라져, 동쪽으로 눈 돌리는 중국

[그래픽=아주경제 DB]



필자가 속한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은 이달 초 중국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일대일로'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진행하고 일대일로의 핵심 지역인 신장위구르자치구를 답사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중국이 일대일로의 내용과 범위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된 일대일로에서 '일대(一帶)'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로(一路)'는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더 세분하면 6개의 경제회랑을 통해 유라시아 전체를 연결하려는 시도다. 중국은 협력과 공영을 원칙으로 유라시아의 공동번영을 약속했지만,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23일 일대일로의 해외 거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다르 항구가 있는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지역에서 분리주의자들이 중국 영사관에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파키스탄 국내 문제와 인도와의 적대관계가 더 깊은 근원으로 얽혀 있지만, 테러단체는 중국에 억울하게도 일대일로를 통한 외세의 침탈을 명분으로 앞세웠다.

지난 5월에는 말레이시아가 일대일로 관련 프로젝트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직설적으로 일대일로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도 적대적이지는 않더라도 향후 일대일로와 경쟁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독자적인 유라시아 연결 프로젝트인 '유러피안 웨이(European Way)'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은 그동안 일대일로에 대해 지지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면서 일대일로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일대일로 자체보다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측면이 컸다. 이제까지의 진행상황을 보면, 일대일로에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가 포함돼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중국 내에서도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쪽의 동북3성이나 산둥성은 일대일로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따라서 일대일로는 개혁‧개방 이후 동아시아가 접해 있는 동쪽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해왔던 중국이 낙후된 내륙을 개발하고 서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서진(西進)'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해 미묘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와 관방 언론의 공식적인 입장은 여전히 성과에 대한 찬양 일색이지만,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성과가 예상을 뛰어넘었지만, 문제도 출현하기 시작했다"거나 "일대일로가 서쪽에 치중했던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 한반도를 비롯한 동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언급도 있었다. 중국이 이제까지 일대일로는 서진이 아니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반복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태도였다.

이는 최근의 변화 조짐들과도 일치한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북한에 일대일로 참여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북한 노동신문이 일대일로에 우호적인 르포 기사를 싣기도 했다. 9월에는 랴오닝성이 일대일로 종합시험구 건설 계획을 통해 동북아와의 협력방안을 제시했고, 기존 6대 경제회랑에는 없었던 '동북아 경제회랑'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형식적이나마 일본의 참여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변화와 조정은 일대일로 자체의 문제는 물론, 미·중 무역갈등과 최근의 한반도 정세가 주요하게 작용한 듯하다. 미국과의 대결이 격화되면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지지가 절실해졌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대일로를 통해 북한과의 연결을 적극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가 공식 주제였던 이번 여행에서도 중국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요 답사 장소였던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접경 지역인 호르고스(Khorgos)의 국제변경합작중심은 일대일로의 성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었다. 열댓개의 거대한 면세 상점이 운영 중이며 추가로 계속 건물을 올리고 있다. 카자흐스탄 택시가 직접 들어와 물건을 실어나르고 상대적으로 솜씨가 좋은 신장 지역의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부유층들이 드나들고 있다. 주변 중국 마을의 주민들은 면세품을 잔뜩 사다 팔아 가외 수입을 얻느라 바빴다. 연간 출입경 규모가 중국은 550만, 카자흐스탄은 1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상상하는 일대일로에는 이런 모습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의 개방에 대한 기대로 들끓는 한국에서 온 학자들에게 이곳을 보여준 의도도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가 일대일로의 근본적인 전환인지, 아니면 현재의 급박한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미봉책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대일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우리에게 한·중 관계의 개선, 북한의 개방, 한반도의 평화 같은 국익의 증진을 가져올지, 아니면 중국에 대한 종속을 강화하고 미·중 간의 다툼에 쓸데없이 연루되는 위험성만 높일지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을 통해 간접적이든, 아니면 좀 더 직접적이든 조만간 일대일로가 우리에게도 본격적인 현실이 될 것이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