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첫발부터 삐걱]경제·노동 전문가 4인, 노동 위기 극복 키워드 4개...‘정부 리더십’, ‘인내’, ‘양보’ 그리고 ‘사회적 대화’

2018-11-22 16:04
22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
정부, 민주노총 대화의 장 들어오도록 설득 필요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박지순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사진=성태윤 교수]

김광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사진=김광석 교수]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권혁 부산대 교수]


얽히고 설킨 노동 문제를 해소하려면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가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22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출범한 이유다.

하지만 노동계 한 축인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석과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경제·노동 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을 대화의 장으로 다시 들어오도록 정부가 설득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문제는 방식이다. 대화가 아닌 점거농성, 총파업 등 집단투쟁을 택한 민주노총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어렵다고 노동자들을 배제할 수 없고, 노사 관계를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경제가 위기에 놓여 있다.

하강국면에 접어든 한국경제를 반등시키려면 주체인 노·사·정이 꼬인 노동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 시발점이 사회적 대화다.

‘정부 리더십’과 ‘인내’ ‘양보’ ‘사회적 대화’ 등 전문가 4인은 지금의 경제·노동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 4가지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되, 민주노총을 포용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경제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광주형 일자리 △최저임금 인상 등 민감한 노동 현안을 아무런 목적 없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노동계에 끌려 다니는 양상이 돼서는 안 된다. 촛불 정국으로 세워진 정부이기에 노동계는 계속 ‘촛불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며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득권이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정부가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 사례를 들었다. 2000년대 초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률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 내각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자 △임금 삭감 △복지 축소 △해고 제한 규정 완화 △비정규직 도입 등 하르츠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저소득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사업주의 고용 부담을 덜어주자는 데 노·사·정이 동의했다.

2003년 하르츠 개혁 후 중·장년층이 저임금 일자리를 분담하며 경제 활동에 뛰어들었고, 고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3년 65%였던 고용률이 2017년 76%로 증가했다.

박 교수는 “하르츠 개혁의 중심에 슈뢰더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며 “독일 정부는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사 모두에게 물었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극복하자고 설득했다. 그 방식이 사회적 대화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민주노총을 배제하지 말고,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면 끝까지 설득하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도 주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일단 사회적 대화를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정부는 민주노총과 함께 간다는 뉘앙스를 계속 줘야 하고, 국회 입법·개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노총에 대화를 시도하되 압박하지 말고 때로는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광주형 일자리 사업 등 민감한 노동 쟁점도 정부가 필요한 이유를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부작용 등 보완 대책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광석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는 “탄력근로제 확대, 광주형 일자리 모두 임금 삭감, 노동조건 악화 등의 우려 때문에 노동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제가 시행되면서 IT·제조업 등 탄력근로가 필요한 업종이 있으니 일시적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하되, 점차 제도를 없애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엑소더스’가 시작된 상황에서 노동자 일자리, 고용 안정을 꾀하려면 광주형 일자리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며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임금을 덜 받되, 안정적인 고용을 택하는 것이 노동자들한테도 도움이 된 다는 점을 정부와 광주시가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에 끌어들이려면 목적과 조건 없이 대화의 문을 항시 열어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사정이 주고받기식 거래를 하자는 자세로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시작되는데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 한쪽이 반대하는 사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 있는 대화를 하려다 보니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정부는 민주노총이 반대하는 이유, 경영계가 주장하는 근거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적 대화는 일단 시작하는 게 필요하지 결과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면서 “민주노총도 맹목적 반대로서는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리보다 대화의 장에 들어와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