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만에 4년 고점서 약세장으로...국제유가 급락 왜?
2018-11-14 10:43
WTI, 12거래일 연속 하락…브렌트도 약세장 진입
국제유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불과 한 달여 만에 4년 고점에서 20% 넘게 떨어졌을 정도다. 이번에도 수급난이 악재로 작용했지만, 시장의 걱정거리는 공급난에서 공급과잉으로 바뀌었다. 2014년 6월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웃돌던 국제유가가 2016년 초 20달러 선까지 자유낙하했을 때도 공급과잉 우려가 배경이 됐다.
◆공급난 우려가 공급과잉 우려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7.1% 하락한 배럴당 55.69달러를 기록했다. 하루 기준으로 3년여 만에 최대 낙폭으로, 지난해 11월 16일 이후 최저치다. WTI 가격은 12거래일 연속 떨어져 역대 최장기 하락행진 기록을 새로 썼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불과 6주 전에 2014년 이후 최고치에 도달한 국제유가가 급락세로 돌아선 건 유가 전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공급난을 우려했던 시장이 공급과잉을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에는 공급난이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재개를 앞두고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80만 배럴 감소한 탓이다. 브렌트유와 WTI 가격은 각각 배럴당 87달러, 77달러 턱밑까지 올랐다. 연초 62달러, 59달러 선에서 반등한 것이다.
◆글로벌 증시 투매, 달러 강세도 영향
최근 글로벌 증시를 뒤흔든 투매 바람이 유가 급락을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증시 대표지수인 S&P500지수는 국제유가가 지난달 초 고점에 도달한 지 1주일 뒤 강력한 투매 바람에 휩싸였다. 당시 S&P500 종목 3분의 2가 전 고점 대비 10% 이상 떨어져 조정장에 들어섰다. S&P500지수는 10월에만 7% 가까이 떨어졌다. 한 달 낙폭이 2011년 9월 이후 가장 컸다.
유가와 주가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증시를 강타한 투매 폭풍이 원자재를 비롯한 위험자산 전반으로 번져 유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달러 강세도 유가에 부담을 줬다. 달러 값이 오르면 달러로 가격을 매기는 국제 원자재 가격은 하락한다.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5.6%, 지난 9월 저점에서는 3.6% 올라 전날에는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OPEC+ 증산…트럼프 "유가 더 낮춰야"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움직임도 공급과잉 우려를 부추겼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이른바 OPEC플러스(OPEC+)는 2016년 말 감산 합의로 국제유가 반등을 이끌었지만, 지난 6월에는 감산 합의를 일부 완화하는 방식의 증산에 합의했다. 그사이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3대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 대이란 원유 제재를 재개하며, 한국을 비롯한 8개국에 6개월간 제재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이 가능해진 셈이다. 덕분에 대이란 제재 우려로 인한 유가 상승 압력이 누그러졌다.
국제유가가 더 낮아져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유가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전날 트위터에 "바라건대,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은 원유를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가는 공급에 기초에 더 낮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사우디가 다음달부터 수출물량을 하루 50만 배럴 줄이겠다고 한 걸 두고 한 말이다.
◆사우디 감산 선언…12월 OPEC 총회 촉각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유가에 하락 압력이 지배적이지만, 사우디가 OPEC+의 감산을 주도하면 판세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유시장의 불균형이 OPEC의 감산 전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CNN은 OPEC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OPEC+가 하루 120만배럴 규모의 감산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OPEC+ 대표들이 모일 OPEC 총회는 다음달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다.
맷 바디알리 밴연힐리서치 선임 애널리스트는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산유국인 사우디가 한계에 도달한 산유량을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지난달 하루 평균 1060만 배럴을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