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염정아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완벽한 타인'에 계속 눈물만"

2018-11-07 17:08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수현 역을 맡은 배우 염정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 속 수현은 어느 모임에선가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인물이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유해진 분)과 시어머니에 치여 살고 두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기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그는 잘난 친구(김지수 분)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배 아프고 이따금은 소외감과 자격지심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극 중 수현이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는 건 배우 염정아(46)의 공이 크다. “주변에 이런 인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는 그의 말처럼 수현은 나 혹은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면들을 가지고 있다. 그 ‘인물’ 자체가 되어 관객들을 설득하는 것은 곧 염정아의 장기(長技)이기도 하다.

최근 아주경제는 영화 ‘완벽한 타인’의 배우 염정아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완벽해 보이는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 문자, 카톡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게임 때문에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 속 염정아는 태수의 아내이자 문학에 빠진 가정주부 수현 역을 맡았다.

“‘완벽한 타인’은 완전히 처음 보는 영화였어요. 시나리오도 구조도 모두 신선했죠. 거기다 이재규 감독님이 워낙 작품을 잘 찍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믿음이 있었어요. 배우들도 너무 완벽하니까요! 저만 잘하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죠.”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수현 역을 맡은 배우 염정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탄탄하면서도 신선한 시나리오. 염정아는 “웃기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고 소감을 전해왔다.

“영화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수현도 그렇지만 석호(조진웅 분)와 예진(김지수 분)의 모습에 울컥하더라고요. 영화 말미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신이 있는데 그때 석호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렇게 짠하더라고요. 계속 계속 눈물이 났어요. ‘아,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하고.”

염정아의 말처럼 영화 ‘완벽한 타인’은 터져 나오는 웃음 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특히 수현은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로 많은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받았던 터.

“주변에 이런 인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그리고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것보다 순종적인 면을 더 많이 표현하고자 했죠. 수현이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남편에게 하대 받는 부인의 모습…. 저 역시도 모르지 않죠. 우리네 엄마들이 대부분 이런 일들을 조금씩은 겪으면서 살아왔으니까요.”

또한 영화 ‘완벽한 타인’은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앙상블로 보는 재미를 더했던 작품. 이 완벽한 연기 호흡은 배우들이 ‘식구’가 되며 더욱 단단해졌다고 한다.

“극 중 인물들이 40년 지기 친구로 나오는데 배우들끼리도 어떤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더 합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그런 경계선은 촬영 초반에 금방 허물어졌어요. 매일 함께 촬영하는 데다가 밥을 같이 먹으니까. 더 가까워지더라고요. 이게 ‘식구구나’ 싶었죠.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온종일 같이 있으니까 거의 가족처럼 지냈죠.”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수현 역을 맡은 배우 염정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소 성격이며 습관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는 염정아에게 “각각 배우들과 캐릭터의 싱크로율은 어떤 것 같냐”고 묻자 “다들 자기 성격과 다르다”며 웃어 보였다.

“태수부터 석호, 준모, 예진, 세경, 영배까지. 전부 다른 것 같은데요? 굳이 꼽자면 세경이를 연기한 송하윤 씨는 성격이 통통 튄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도 같아요. 저는 주부라는 점에서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다른 배우들은 다른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약 한 달간 ‘완벽한 타인’과 수현에게 푹 빠져 살았다는 염정아. 그에게 “이번 작품에서 관객들이 눈여겨볼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단박에 “리액션”이라고 했다. 실제 저녁 식사 자리를 보는 것처럼 제각각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리액션들은 인물의 개성을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른 분들 연기할 때 혼자 리액션을 엄청 했어요!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극 중 인물들의 리액션은 다 이유가 있거든요. 두 번 보면 더 잘 보이는 부분이기도 해요.”

리액션 연기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애드리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염정아는 “저는 정말 애드리브를 못 한다”며 손까지 내젓더니 “애드리브를 잘하는 배우들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거들었다.

“유해진 선배와 조진웅 씨는 애드리브를 정말 잘해요. 다 신기해! 다들 연출자의 눈을 가지고 있는 건가? 대사를 만들고 상황을 이어가는 게 놀라울 따름이에요. 저는 아예 못하거든요. 말투를 바꾸거나 어미를 제 식대로 바꾸는 정도만 할 줄 아는데. 놀랍기도 하고 보는 재미가 있었죠.”

어느덧 배우 데뷔 27년째. 염정아는 1991년 데뷔 후 무려 54개의 작품에 참여해왔다.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보면 끌린다”는 그에게 작품 선택의 기준을 물으니 그는 “그간 읽은 책이 많다 보니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다”고 운을 뗐다.

“어떤 기준을 정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어요. 그런 작품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요. 벌써 연기를 시작한 지 27년째지만 그 시간은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아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지? 나이를 먹는 건 크게 관심 없어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수현 역을 맡은 배우 염정아[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연기 경력 27년째인 베테랑 배우에게도 여성 작품·캐릭터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염정아는 “여자가 할 역할이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완벽한 타인’ 같은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여자가 맡을 역할이 없다고 말해왔지만 각자 자신이 연기할 역할이 있으면 된다고 봐요. 서로 욕심내지 않고요. 다만 많은 여배우가 섭섭해하는 건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 여자 캐릭터가 없다는 거예요. 저도 그런 대작에 출연하고 싶지만, 역할이 없으니까요. ‘완벽한 타인’이 잘 되어서 각자 서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요.”

인터뷰를 정리하며 염정아는 영화 ‘완벽한 타인’이 특정 연령층이 아닌 다양한 세대에게 공감과 재미를 줄 수 있다며 깨알 같은 홍보를 더 하기도 했다.

“우리 영화는 많은 걸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어떤 연령층만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20대, 30대 그리고 어머님들까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봐요. 많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