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큰 별' 신성일 별세…빈소는 오늘(4일) 오후 1시부터 조문 가능

2018-11-04 10:35
잘생긴 외모로 1950∼60년대 청춘스타 등극

[사진=연합뉴스]



고(故) 신성일의 빈소가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된 가운데 4일 오후 1시부터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께 전남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1세.

신성일은 전날인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져 그간 치료를 받아오던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곁은 아들 강석현 등 가족들이 지켰다.

막내 딸 강수화씨는 이날 오전 뉴스1과 통화에서 "경황이 없어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고 슬픔 속에 부친을 떠나 보낸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강수화씨는 신성일 엄앵란 부부의 1남 2녀 중 막내딸로 어머니 엄앵란의 매니저 역할도 하고 있다.

1937년생인 신성일은 1960~197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원조 미남 배우다. 1957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전속배우가 되며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당시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신성일이란 예명을 받았다.

이후 신필름을 나와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활동하던 배우들이 중후한 매력을 가진 것과 다르게 신성일은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한 후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불타는 청춘'(1966), '별들의 고향'(1974)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주연작만 500편을 넘겼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봉한 1194편의 작품 중 324편이 그의 출연작이었다. 그와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여배우만 119명에 달했다. 연기 뿐 아니라 제작과 연출에도 도전해, '연애교실'(1971),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을 제작하고 연출했다. '그건 너'(1974)를 연출하고, '코리안 커넥션'(1990), '남자시장'(1990), '물 위를 걷는 여자'(1990),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안개 속에서 2분 더'(1995) 등을 제작했다.

많은 활동을 한 만큼 화려한 수상 경력도 가지고 있다. 1964년 제7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시작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아시아영화제, 황금촬영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다수의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1964년 당대 최고의 톱 배우 엄앵란과 결혼한 고인은 장남 강석현씨, 장녀 강경아씨, 차녀 강수화씨 등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발인은 오는 6일 진행되며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