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훈 감독 "'창궐',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정성 느껴졌으면"
2018-11-02 11:03
지난 25일 개봉된 영화 ‘창궐’ 역시 다르지 않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야귀가 창궐한 조선시대, 조국의 안녕과 왕위에 무관심하던 왕자 이청이 돌아오고 민초들과 만나며 변화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서 김 감독의 정서와 인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단순히 야귀와 맞서 싸우고 해치우는 영화일 거라 짐작했던 영화 ‘창궐’은 이청의 성장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는 김 감독의 입장을 대변해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가진 김성훈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 영화사 이창의 작가님과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회사를 하고 있다. 사실 회사라기보다 모임에 가깝다. 거기에서 작가·감독이 시나리오 아이템을 개발하는데 ‘창궐’은 ‘공조’ 이전에 개발을 마친 상태였다. 영화를 몇 분에게 제안했다가 고사를 당했고 결국 제게 제안이 오게 되었다. 마침 영화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가 떠올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다.
확신을 준 구체적 이미지는 무엇인가?
- 동양화적인 붓의 힘이 살아있는 액션 신이었다. 너무 클래식해도 안 되고, 모던해도 안 되는 중간의 느낌에 힘이 실린 야귀와 주인공 그리고 궁의 배경이었다. 그 이미지를 최대한 살린 게 지붕 전투 신이다. 낫과 곡기를 든 민초의 모습과 청이 입은 하얀 옷이 더러워지는 과정 그리고 용포를 벗지 못한 채 자준이 야귀가 되어가는 모습 등이 선명했다.
-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돌아가라고 했을 때 여기에서 뭘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계를 다 써보니 ‘아, 나는 여기까지구나’를 알게 되더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내가 아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영화 세 편을 찍고 지식이 실제를 넘어가는 경험을 했고 내가 쓸 수 있도록 체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야귀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다. 드라큘라와 좀비의 속성이 섞인 크리처였는데
- 어디에서 뭘 가져올지 고민하기보다 하나만 정해 파보자고 생각했다. 밤에만 움직여 보자, 소리에 민감한 게 좋겠다, 움직임은 어떤 게 좋겠다는 식으로 점점 확장해나갔다. 야귀에 대한 이미지는 살을 뜯어먹는 것보다 피를 빠는 것이 영화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자준의 행위가 조선으로 야귀가 들어오는 계기를 만들고 또 서로 피를 빨리며 변해 가는데 이야기와도 접목된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빈칸을 채운 거다. 사실 아쉬운 점은 비주얼적으로 조금 더 크로테스크하길 바랐었다. 목이나 관절 등이 늘어나고 움직임도 더욱 기괴하도록 그려내고 싶었는데 제작 여건상 많은 야귀를 만들어야 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서양 크리처의 상징 격인 드라큘라와 좀비를 섞어놓다 보니 사극 배경에서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리하게도 서양에서 온 괴물로 설정했더라. 관객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중요했겠다
- 가장 중요했다. 콘셉트가 두 개 섞이는 게 신선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부분이 있다. 관객들이 낯설고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이 영화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코미디를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요소를 다 뺐다. 야귀에 대한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하지만, 너무 설명적이어서도 안 되고…. 많은 걸 고민했다.
움직임도 굉장히 독특하더라. 기존 좀비보다 빠르고 드라큘라보다는 기괴한 몸짓을 가졌다
- 나름대로 캐릭터마다 설정을 부여했다. 어떤 반응에 모두 다 같은 속도로 반응하지 않게끔 말이다. 뒤에서 소리가 났을 때 다 같은 속도로 돌아보면 무리가 힘이 적어진다. 캐릭터를 부여하고 속도에 변화를 주니 힘이 느껴지더라. 결과적으로는 야귀를 만들 때 중요했던 건 물량이었다. 어떤 시도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는데 실패했을 경우 그 피해를 받는 건 우리니까 그 하나의 실패로 얼마나 큰 피해로 이어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이 창궐이다. 야귀가 창궐하는 것 그 근간에는 하나의 잘못이 있다는 것. 그래서 야귀의 숫자가 엄청나길 바랐다.
평소 좀비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와 ‘나는 전설이다’ 등은 재밌게 보았다. 다만 저는 좀비 호러 장르에 대한 마니아가 아니라서 그 이상을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창궐’을 찍기로 하고서는 보지 않았다.
‘공조’는 현실 밀착형 액션이었고 ‘창궐’은 사극 액션이었다. 두 액션영화를 경험해 본 바는 어떤가?
- ‘공조’의 액션을 좋게 봐주셔서 이번 영화에도 액션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신 것 같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하하하. 액션 신은 확실히 공간과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이 중요하다. 현대는 현대의 재미가 있고 사극은 사극만의 재미가 있다. 다만 사극 액션이 조금 더 어렵다. 의상도 길고 무기도 거친 데다가 제한적이니까. 대신 고생한 만큼 액션의 선은 살아난다. 근사한 게 분명 있다. 현대 액션은 스피드한 걸 보여주기 좋은 것 같고.
청이 들고 다니는 언월도에서 참마도로 바뀌었다고?
- 언월도는 달 모양으로 생긴 칼이다. 실제로 청이 들어보니 안 멋있더라. 동작이 부드러워 보였다. 그걸 원한 게 아니라서 참마도로 바꿨고 조금씩 변형을 가했다. 그렇게까지 길지 않은 게 길이도 늘이고 두껍게 만들었다. ‘공조’를 함께한 김태강 무술 감독과 ‘창궐’을 함께 했는데 그때 말했던 것이 ‘팬시(fancy)하면 안 된다. 무술로 가지 말자’와 ‘칼이 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청은 힘이 있는 움직임이라면 박종사관(조우진 분)은 송곳처럼 정확히 찌르는 느낌으로.
엔딩크레딧도 인상 깊었다. 야귀 역의 배우들의 민얼굴이 담긴 사진을 엔딩크레딧에 올렸는데
- 촬영 때마다 엄청 추웠다. 난로 몇 개 세워두고 밤을 세고 몇 달을 고생한 친구들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돈 받고 그렇게 열심히 못한다. 꿈이 있고 열정이 있으니까 함께 고생해준 거다. 저는 그게 참 존경스럽다. 이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뭘 사줘도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 그러던 중 회식자리에서 이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고 문득 ‘이들의 맨 얼굴을 이렇게 오래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즉흥적으로 현장에서 ‘사진 한 장씩 달라’고 해 투자사에 말하고 엔딩크레딧에 싣게 되었다. 그들 스스로도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고 그들을 아는 관객들도 함께 즐겼으면 했다. 정성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작은 것이었는데 배우들이 좋아해 주어서 기분 좋았다.
야귀 역의 배우들의 얼굴 공개될 때, 보는 내가 다 뭉클하더라
- 영화는 결과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한 작품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이고 ‘잘해보자’고 단단히 뭉치는 것, 그 마음이 영화에 고스란히 나온다고 믿는다. 영화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어가는 매체 아닌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야귀가 새로운 게 아니더라도 관객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건 그들의 노력, 그 마음이 전해져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 김 감독의 영화 속에 반영되는 것 같다. ‘마이 리틀 히어로’부터 ‘공조’, ‘창궐’ 모두
- 저는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도드라진 즉 타고난 악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 과정에서 변화하게 된 인물을 그리고 싶다. 인간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건 큰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자준 역이 딱 그렇다. 그가 나쁜 이유는 동기가 순수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희생도 감수해야한다는 것. 그게 저는 절대악이라고 본다. 어쨌건 영화의 끝에는 나아진 상황, 희망, 긍정적 모습이 보여야 한다. 그게 단순히 맹목적인 해피엔딩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 속 대사나 상황 묘사들을 두고 정치적 메시지가 다분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러려고 내가 왕이되었나’는 직설적이었고 청이가 횃불을 든 민초를 바라보는 모습도 분명 연상할 만한 거리가 있었다
- 횃불보다는 낫과 곡기를 들고 궁을 찾은 민초의 행동이 중요하다. 그들이 찾아온 걸 본 청이는 당장 내일부터 지도자가 되더라도 백성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거다. 저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두고 박근혜 정권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청이와는 입장이 다르다고 본다. 제가 주목하고 싶은 건 말뿐이 아닌 행동이다. 그 장면을 촛불에만 국한시키자면 영화가 말하는 희망보다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물론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되었나’ 하는 대사는 의도적이었다. 이 이상 희망이 없고 절망적인 왕을 설명할 수가 없다.
10분만 영화를 공개한다면 어느 장면을 보여주고 싶나
- 마지막 날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인정전 안에 누가 불을 붙일 것인가 고민하다가 박종사관이 남게 되고 다음으로 이청이 갈 때까지가 딱 10분이다. 그 장면이 하이라이트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