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와 도전-下] 권오현 말하는 ‘초격차’... 이미 삼성 안에 있다

2018-10-16 07:06
이재용 경영철학으로 이어져... 대형 M&A·인재 1만명 육성 실천
2020년 위기설... 전문가들 "스스로 변화할 수 있게 규제완화해야"

[사진=삼성전자 제공]


# “중국의 기술 추격이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자만하지 않고 기술개발을 가속화해 어떤 상황에서도 경쟁력과 차별화를 유지해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지난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 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

# “삼성전자는 매년 세계시장에서 약 5억대 기기를 판매한다. 해당 제품에 AI(인공지능)와 IoT(사물인터넷) 기능이 적용되면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해 상당히 많은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장]

# “(폴더블 스마트폰 사업) 세계 최초보다는 진짜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혁신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폴더블폰은 '최초'를 뺏기고 싶지 않다." [지난 8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고동진 삼성전자 IM(IT·모바일) 부문장]

최근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저서 <초격차>가 업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회사의 세 기둥인 DS, CE, IM 부문장의 발언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중국의 추격 등으로 인해 ‘2020년 삼성 위기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세 부문장의 이 같은 발언에는 삼성을 상징하는 ‘초격차 전략’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권 회장이 <초격차>에서 소개한 얘기는 삼성전자의 임직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내재화된 것으로,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세 부문장을 중심으로 '혁신 DNA'가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성 고위임원 “우리는 언제나 한발 앞서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최근 만난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들은 <초격차>를 읽은 뒤 “우리는 언제나 한발 앞서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권 회장도 삼성전자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책을 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삼성은 창사 이후 위기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며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 시절부터 초격차 전략은 시작됐으며 이건희 회장, 이 부회장도 이를 변하지 않는 경영철학으로 지켜오고 있다”고 부연했다.

권 회장도 <초격차>에서 삼성전자의 초격차를 향한 첫걸음은 1983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진출 선언이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다만 초격차가 2위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 아예 추격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단편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봤다.

권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초격차’라고 하면 으레 ‘삼성만이 할 수 있는 것’, ‘승자 독식’ 또는 ‘1등이 혼자 다 가져가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혼자서 다 가져간다는 것도, 혼자만 살아남는다는 것도 모두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한 기업이 한 제품군을 독점한다면 시장의 생물학적 순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그 기업의 발전과 변신도 멈추게 될 것”이라면서 “초격차는 비교 불가한 절대적 기술 우위와 끊임없는 혁신, 그에 걸맞도록 구성원들의 격을 높이는 것이고, 그 기술, 조직, 시스템, 공정, 인재 배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격(格)’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지난달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남북 정상 및 수행원 오찬에 앞서 대동강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초격차 전략, 이 부회장 실용주의 노선과 사회적 가치창출 노력으로 드러나
이는 이 부회장의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실용주의 노선에서도 드러난다. 이 부회장은 2014년 11월 석유화학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방위산업 부문의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전격 매각했다. 이듬해 10월에는 삼성정밀화학, BP화학, 삼성SDI의 화학 부문도 롯데에 팔았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면모는 등기이사 취임 후에도 이어졌다. 2016년 11월 그는 9조4000억원을 들여 미국의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인수하며 업계 선도업체로 단번에 도약했다.

사업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초격차를 사회적 가치 창출 차원에서도 실천하고 있다. 최근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통해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인재 '1만명 육성'에 본격 돌입한 게 대표적인 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를 통해 정보기술(IT) 생태계 저변을 확대하고 청년 취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 8월 발표한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의 후속 조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을 공개하기에 앞서 “삼성만이 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 창출을 열심히 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며 "기업의 본분을 잊지 않고 젊은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약속한 바 있다.

◆삼성 스스로 위기해법 찾도록 여건 마련해야
업계와 학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위기론은 외부에 의한 것이지만 내부에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을 바꾸라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 등을 통해 발판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언제나 초격차 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성장에 기여해왔다”며 “과거 잘못된 관행으로 초격차 전략에 차질을 빚을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답을 찾도록 숨 쉴 틈을 주면 현 위기를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삼성전자가 벌어들이는 연 매출만 따져도 우리나라 연간 예산의 절반이 넘는다”며 “국내 기업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규모로 삼성이 적극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을 통해 활로를 열어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 업체들이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을 빠르게 추격해오는 것은 현지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중국처럼 기업들을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발목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누구? ‘반도체 신화’ 만들어낸 ‘일등공신’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이 회사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으로 평가된다.

그는 1985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서 삼성과 첫 인연을 맺었다.

또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이후 삼성전자가 걷게 되는 ‘초격차 전략’의 실질적 토대를 닦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삼성전자 디바이스 솔루션(DS) 사업총괄 사장을 거쳐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DS사업부문장에 올랐다.

그의 진두지휘하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에 오르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아울러 그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국내 전문경영인 최고 연봉을 기록, ‘연봉킹’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작년 10월 경영진의 세대교체와 경영 쇄신을 강조하며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차세대 기술을 연구하는 종합기술원 회장으로서 경영 자문과 인재 육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