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40년 ②] 개혁개방 현장을 가다

2018-10-11 05:02
홍콩과 마카오의 개혁개방 성공신화
광둥성 선전과 주강삼각주가 이뤄낸 기적

1985년 홍콩에서  [사진=김진호 교수 제공]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후 또다시 복귀한 덩샤오핑(鄧小平)은 '4인방 타도'를 마치고 1978년에 실질적인 공산당 지도자가 됐다. 그해 10월 그는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8일간 체류하며 가전공장, 제철소 등을 견학하고 중국 개혁·개방의 밑그림을 그렸다. 덩은 그해 12월 열린 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1기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전격적으로 채택해 신중국 계급투쟁의 혁명을 종식하고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장정(長征)을 시작했다. 

개혁·개방 정책을 중국 공산당의 공식 노선으로 채택한 덩은 1980년 8월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임위 15차 회의에서 ‘광둥성 경제특별구역 조례’를 통해 선전(深圳)과 주하이(珠海)를 중국 최초 경제특구로 정하고 개혁·개방 실험에 나섰다. 개혁·개방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던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여파로 개혁·개방 노선이 흔들리자 권좌에서 물러나 막후에서 3년간 보수(공산주의 건국 사상 강조)와 진보(개혁·개방 주장) 간 대립을 조정하다가 마침내 1992년 1월 20일 선전을 찾아 "개혁·개방 노선은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고 외치며 또다시 개혁·개방 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른바 그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다. 지금까지도 선전의 중심가인 선난중루(深南中路) 사거리에 걸린 덩의 대형 초상화에는 ‘개혁·개방 노선은 100년 동안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그의 유지가 적혀 있는데, 이는 중국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의지와 공적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친인 시중쉰(習仲勳)도 오랜 하방생활에서 복권돼 덩의 지시에 따라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는 광둥성 제1서기를 지냈다. 그는 1979년 덩에게 경제특구 지정의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이를 통해 선전특구 성공신화엔 덩샤오핑-시중쉰-시진핑이 연결되는 개혁·개방의 성공과 중국 지도자의 정책이란 상징성도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이저우(惠州)시에 포함돼 변방 농촌이던 선전은 홍콩을 모델로 하는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의 새로운 도시로 조각되기 시작했다. 선전특구의 개발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홍콩과 마카오에서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식 개혁·개방 1번지 선전과 그를 둘러싼 주하이(珠海)와 홍콩, 마카오 등지는 광둥성 개혁·개방의 살아있는 학습 현장인 셈이다.
 

1987년 마카오에서 [사진=김진호 교수 제공]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된 지 40주년이 되는 지금 중국의 변화를 과거와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중국식 기적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개혁·개방 원년인 1978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 농촌의 빈곤 인구가 7억4000만명 감소해 연 평균 빈곤인구 감소는 1900만명에 달했다. 중국의 빈곤 농촌지역 주민 소득도 비교적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도시화도 빠르게 진척돼 2017년 말 중국 도시 상주인구는 8억1000만명으로,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 말과 비교해 6억4000만명 늘었다. 후커우(戶口·호적) 인구 규모로도 1978년 말까지 상하이 한 곳이던 인구 500만명 이상 도시는 2017년 16곳으로 늘었다.

도시 지하철은 1978년 베이징에만 개통됐고, 노선도 달랑 23.6㎞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중국 32개 도시에 지하철이 건설됐고, 노선은 총 4484㎞에 달한다.

철도를 보면, 2008년 베이징~톈진(天津) 구간 고속철을 개통한 이래, 2017년 9월까지 모두 12만7000㎞ 철도가 깔렸고 이 중 2만5000㎞가 고속철도다. 중국이 철도·고속철 강국임을 의미하는 것이자 중국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적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개혁·개방 정책이 중국정부와 사회에 긍정적인 과실만 가져온 건 아니다. 정부 주도형으로 빠르게 개혁·개방을 추진한 중국 사회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안고 있다.  고속성장에 따른 부작용, 예를 들면 빈부격차·도농격차·기업과 금융의 부실과 부정부패 등 중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그중에는 중국의 압축 성장에 따라 나타난 사회 불안심리, 환경문제, 대도시 주택, 교육, 식품안전, 의료문제 등 정부와 사회·가정에 나타난 중국 내부 문제 그리고 국제사회와 중국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수두룩하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 중국의 안보 및 경제, 미·중 관계 문제 등 이제 경제발전 이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강대국 미국의 중국 견제는 무역, 금융, 에너지, 자원을 비롯한 환경, 안보문제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미국 의회는 올해 8월 외국 자본의 미국기업 합병을 심사하는 외국투자위원회(CFIUS)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는데, 심사 대상을 소액투자까지 확대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국 하이테크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 움직임도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를 넘어 차세대 과학기술 패권을 둘러싼 총력전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굴지 통신장비업체 ZTE(中興)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대표적이다. 

또, 미·중 무역에서 미국의 연간 대중 수입품 규모는 약 5000억 달러인 반면, 중국의 대미 수입품 규모는 약 1500억 달러로 3분의1밖에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고관세 부과는 중국의 산업환경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미·중 무역마찰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통한 경제발전, 산업 기술력 강화,  안보 및 군사력 증강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게 현재 미·중 마찰의 원인이다. 개혁·개방정책 성공으로 강해진 중국이 국제사회의 견제를 당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 역시 중국이 맞닥뜨린 과제인 셈이다. 또 중국과 중국인의 국제사회 활동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와 세계시민들의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도 중국이 국제사회와 상응하기 위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과 동북아 국제관계, 한·중 관계의 문제도 개혁·개방을 통한 중국의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과제 중 하나다.

필자는 이를 미뤄볼 때, 중국 개혁·개방의 성과는 지금 새로운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치 '한강의 기적'이 가져온 한국의 경제적 성과를 다시 개혁하는 한국처럼 말이다.

한국과 대만에서 중국을 연구해 왔던 필자는 홍콩·마카오에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살았고,  1989년부터 선전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1년에 몇 차례씩 베이징에서 상하이를 거쳐 선전과 홍콩, 마카오를 꾸준히 방문하며 그 사회의 변화를 실감하고, 감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홍콩은 1·2차 아편전쟁과 1898년 신계(新界)지역 100년 조차로 영국이 관할하던 도시다. 마카오는 16세기 중엽 이후 포르투갈이 점령·통치하던 지역이다. 홍콩과 마카오는 주강(珠江) 삼각주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홍콩에서는 영국 문화와 함께 영어, 마카오에서는 유럽 문화와 함께 포르투갈어가 현지 광둥어(Cantonese)와 같이 사용되며, 서구인과 중국인에 의해 동서문화가 복합적으로 상존하는 광둥성의 도시이자, 중국이 외부로 연결되던 중요한 통로였다.
 

1989년 선전에서 [사진=김진호 교수 제공]


그래서 홍콩과 마카오, 선전과 주하이는 서로 다른 지리적 문화 환경 및 경제발전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주하이와 마카오가 광둥성의 전통적인 모습을 더 잘 유지하고 있다면, 홍콩과 선전은 조금 더 서구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주하이와 마카오가 서로 연계된 유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홍콩과 선전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변화하고 있다. 홍콩이 서구식 시스템에 중국식 문화와 생활방식을 접목했다면, 선전은 중국식 시스템에 서구식 환경과 생활방식을 접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선전은 중국식 개혁·개방 방식으로 만들어낸 국제도시인 셈이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돼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로 통치되는 중국특별자치구인데, 이곳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중국 본토와 연결되는 광선강(廣深港, 광저우·선전·홍콩)고속철’이 개통돼 중국 여러 도시와 고속철로 직접 연결된 것이다. 고속철 개통 당일, 중국 고속열차 ‘푸싱(復興)호’는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이로써 홍콩에서도 고속철 열차 내부는 물론 웨스트카우룽(西九龍)역 내 출·입경관리소, 세관검사소, 검역소, 여객 승하차 플랫폼 등의 시설에서 홍콩법이 아닌 중국 국내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홍콩에서도 서서히 중국적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덩샤오핑이 말하던 50년 불변의 ‘일국양제’는 20여년이 지나며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산둥성 롄화산

이번에 홍콩과 연결된 고속철은 중국 내 구간에서는 시속 350㎞, 홍콩 구간에서는 200㎞ 속도로 운행된다. 개통 당일 홍콩 카우룽반도에 위치한 웨스트카우룽역을 당일 오전 7시에 출발해 북쪽으로 달린 고속열차는 광둥성 선전북역에 19분 만에 도착했다. 선전북역에서 같은 시간 출발한 열차도 웨스트카우룽역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이는 홍콩에서 고속철을 타고 인접한 광둥성 선전, 광저우는 물론 베이징, 상하이, 정저우, 우한, 항저우, 샤먼, 구이린 등 중국 전역 44개역으로 환승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고속철이 완전히 연결됐음을 의미한다. 중국과 특별행정구 홍콩이 더욱 통합되어 가는 게 중국 개혁·개방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세계 최장 55㎞인 해상 ‘강주아오(港珠澳)' 대교는 동쪽으로는 홍콩, 서쪽으로는 주하이와 마카오를 연결하는 해상대교다. 해상교량 35.6㎞, 해저터널 구간 6.7㎞로 홍콩·주하이·마카오를 'Y자' 형태로 연결하는 광둥성 경제핵심지역 도로다.

이 해상대교는 2009년 12월 15일 착공, 2018년 2월 준공돼 현재 개통 준비를 하고 있다. 강주아오 대교가 개통되면 현재 3시간 30분 소요되던 홍콩과 마카오, 혹은 홍콩과 주하이, 주하이와 마카오 거리가 불과 30분으로 단축된다. 즉, 홍콩과 마카오, 선전과 주하이 및 광동성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광둥성의 새로운 개혁·개방이 아닐까? 홍콩, 마카오, 선전, 그리고 광둥성 주요 도시가 연결되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의 경제적 결과이자 일국양제를 내세운 중국 외교정책이  1997년 홍콩, 1999년 마카오 반환에 이어 이뤄낸 또 하나의 쾌거라 할 수 있다.
 

2018년 광둥성 롄화산에서 [사진=김진호 교수 제공]


역사적으로 보면,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기 전까지 홍콩은 국제적 상업도시였지만 중국 남부인 광둥성조차도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빈곤 지역이었다. 두 지역 간 경제력 격차가 워낙 커서 선전에서는 해마다 최소 수천명의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불법 도강(渡江)해 홍콩으로 불법 이주하는 게 중국과 홍콩 정부의 큰 고민거리였다. 홍콩의 재벌 리카싱(李嘉誠)도 광둥성 산터우(汕頭) 에서 몰래 홍콩으로 이주한 사람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당시 광둥성과 홍콩의 차이를 나타내는 살아있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새롭게 변화한 선전을 포함한 광둥성의 도시들은 홍콩의 주민들, 그리고 중국 내륙에서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이전해 사는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선전과 같은 새 도시에는 현지 언어인 광둥어(廣東語)보다는 이주민들에 의해 보통화(普通話·중국 표준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의 메카가 된 선전에는 세계 최대 드론 제작업체 다장(大疆·DJY)과 토종 전기차업체 비야디(BYD), 휴대전화 제조업체 화웨이(華爲), 텐센트(Tencent·腾讯)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중국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IT와 4차산업을 기반으로 창업하려는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젊은 중국 개혁·개방의 도시 선전과 기존의 국제상업도시 홍콩, 마카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계획도시 주하이는 앞으로 광둥성 발전을 이끌어나갈, 중국 경제와 금융 및 산업 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올해만 홍콩, 마카오, 선전, 주하이, 산터우 등지를 여러 번 갔다 왔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교우하던 홍콩, 선전, 산터우 등지의 친구들을 만났다. 광둥성 출신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외지에서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이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홍콩이라는 중국의 특별행정구와 선전이라는 중국 개혁·개방의 메카에 대해 갖고 있는 감회는 아주 특이한 것 같다. 그들은 미국의 '뉴요커'가 뉴욕을 사랑하듯이, 선전과 홍콩을 사랑하는 시민의 특징을 유지하며 중국 개혁·개방의 생생한 역사를 몸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들의 원래 고향이 어디인지는 상관없다. 그들 생각에 선전과 홍콩, 그리고 광둥성은 자신들이 성취한 성과에 대한 긍지로, 자신들이 그곳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듯했다.

김진호 아주경제 중국전문대기자(논설위원),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홍콩 주하이대학 중국문사연구소 석사,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