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시진핑이 당과 군, 두 황관을 동시에 쓰게 된 진짜 이유는?

2018-10-03 06:00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17)
진정한 중국 최고 권력자는 중앙군사위 주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강효백 교수

2012년 11월 15일 시진핑(習近平)은 당총서기 겸 당중앙군사위 주석에 등극했다.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는 당총서기가 된 2년 후에서야 장쩌민(江澤民)으로부터 당중앙군사위 주석을 물려받았다. 시진핑이 전임자들과 달리 진정한 중국 제1인자 직위를 즉각 인계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내외신은 시진핑의 신속한 군부 장악은 곧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의 대표 후진타오의 상왕 노릇을 한 상하이방(?)의 거두 장쩌민과의 동반 자살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그게 아니면, 그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 등 ‘태자당’(중국이 이런 파당이 과연 존재하는가?)의 후광 덕이라고 하고 있다. 독자들 또한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국 정치권력의 역학관계 및 변동 일체를 당파별 권력투쟁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일본 언론식 해석은 ‘1리(一理)’는 있으나 ‘9리(九理)’는 없다. 필자는 이제 그 ‘9리’를 말하고자 한다.

우선 시진핑이 칭화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1979년 3월, 첫 직장이자 2018년 현재 그 수장으로 군림 중인 중앙군사위원회(中央軍事委員會, Central Military Commission 약칭 군사위)와 군사위 주석(主席, Chairman)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중국의 실제 최고권력기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건물(베이징 징산(京山)부근, 상세 주소 미상, 국내최초 공개사진.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중앙 군사위는 중국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민병대 등 중국의 무장력을 총 지휘하는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권력기관이다.

중국의 국가주석은 내각책임제 하의 대통령보다 못한 명목상 국가원수이고, 총서기는 중국 공산당을 명목상으로 대표하는 당서열 1위이다. 이 두 직책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권력의 정점은 군사위 주석이다. 중국 최고 통수권자는 중국 공산당 서열 1위인 총서기가 아닌 군사위 주석이다.

시진핑이 겸하고 있는 국가주석, 총서기, 군사위 주석 3대 직위의 총체가 달걀이라면 국가주석은 달걀 껍질, 총서기는 흰자, 군사위 주석은 노른자라고나 할까?

7인 집단지도체제 하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총서기와 달리 군사위 주석은 주석책임제다. 군사위 주석은 그 직권 범위 내의 사항에 대하여 최종결정권을 가지며, 전군은 반드시 군사위 주석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여야 한다.

군사위 주석이 독자적으로 230만명의 인민해방군(육군 60만, 해군 25만, 공군 25만, 제2포병 11만)과 88만명의 무장경찰, 예비역부대 110만명, 민병대 200여만명 등 중국의 모든 무력을 통치한다.

1983년 군사위 주석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 별도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라는 조직을 따로 설치했다. 그러나 두 기관의 구성원은 같으며 사실상 둘은 같은 기관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25일 제19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 전회)는 시진핑 총서기를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재선출하고, 쉬치량(許其亮) 공군상장과 장유샤(張又俠) 전 장비발전부 부장을 부주석으로 각각 임명했다.

군사위원에는 웨이펑허(魏鳳和) 전 로켓군 사령원을 유임(올해 3월에 국방부장 임명)시키고, 리쭤청(李作成)연합참모부 참모장, 먀오화(苗華) 정치공작부주임, 장성민(張升民)군기율검사위주임을 선출했다. 시진핑 주석은 종전 8명이던 군사위원을 절반인 4명으로 줄이면서 그간 당연직이던 육해공-로켓군 사령관을 전부 배제했다 이로써 시 주석은 군사위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육해공-로켓군 등 실제 동원 역량에 군령권과 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국무원 산하에 국방부가 따로 있지만 국방부 역시 군사위의 지휘 하에 있다. 현 웨이펑허(魏鳳和) 국방부장 겸 군사위원은 시진핑 주석과 쉬치량, 장유샤 부주석에 이은 군 서열 4인자로서, 그의 당직위는 25인 정치국위원(부총리급 이상)보다 한 단계 낮은 204명 중앙위원(장관급 이상)의 하나에 불과하다.

시진핑 주석을 제외한 군사위 수뇌부중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먀오화 정치공작부주임이다. 시진핑보다 두 살 연하인 먀오화 정치공작부주임(1955년생, 푸저우출신)의 군 경력은 여타 군사위 위원과 비교해 독특하다. 야전군 지휘관 경력은 거의 없고 대부분 정치위원 경력이다. 그는 1983년 92사 26단 정치위원에서부터 2017년 인민해방군 정치위원까지 무려 24년간 정치위원을 지냈다. 먀오화는 푸저우 주둔 제31집단군 정치위원(1999년–2005년)시절 푸젠성 미사일부대 예비역사단 제1정치위원(1996-2002)을 겸하던 시진핑 푸젠성 부성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중국 중앙군사위 수뇌부 인적사항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그렇다면 정치위원은 무엇인가? 정치위원은 군 부대 내에서 사상·이념·정치노선 등을 교육하고, 공산주의 이념을 군대와 작전에 투영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치위원은 사령관 등 장교들을 감시·감독하고 당중앙의 지시를 전달하고 특이사항을 당중앙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는다. 정치위원은 소대부터 사단, 군단까지 모든 중국군 편성단위의 서열 1위이다. 이들 정치위원을 총괄 지휘하는 부서가 바로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다.

이러한 중국 특유의 정치위원제는 ‘공산당이 공산군을 지휘하는 원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제 사례 중 하나이자 중국에서 군사 쿠테타가 성공하기 극히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毛澤東)부터 시진핑까지 '당이 군대를 영도한다(黨指揮槍)'는 원칙이 철저히 중국 특색적 법제화되고, 또 그대로 강력히 구현되고 있다.

마오쩌둥부터 시진핑까지 역대 중국 최고지도자는 정치위원 출신과 민간 당원 출신으로 구분될 수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진핑은 정치위원 출신이고, 화궈펑(華國鋒)·장쩌민·후진타오는 민간당원출신이다. 전자는 중국 공산당의 ‘성골’이라면 후자는 ‘진골’이라고 할 수 있다.

촌뜨기 토종 공산주의자로 소외되고 있었던 마오쩌둥이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1930년 8월, 후일 대장정의 주력부대가 된 홍군 제1방면군을 창설해 ‘정치위원’을 맡은 후부터였다. 정치위원 마오쩌둥은 군단장 주더(朱德)를 지휘·감독했다. 1936년 10월 중앙 군사위주석에 등극하고 1976년 9월 사망 시까지 무려 40년간 군사위주석에 군림했다.

오늘날 'G2(주요2개국)' 중국의 초석을 닦은 덩샤오핑의 스펙 역시 ‘정치위원에서 정치위원으로’였다. 1929년 덩샤오핑은 정치위원으로 중공군에 입문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부총리로 전직할 때까지 무려 21년간 정치위원이었다.

후일 덩샤오핑이 명실상부하게 정직(正職)을 맡았던 직위는 군부를 통수하고 전권을 장악하는 당중앙군사위주석이 유일하다. 국가주석과 당주석은 물론 국무원 총리조차도 단 한번도 맡은 적이 없던 덩샤오핑이 제2세대 영도핵심으로 공인받고 있는 까닭은 그가 당 군사위주석을 맡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부친이자 덩샤오핑의 측근인 시중쉰(習仲勳)도 약관 20세에 1933년 3월 섬감변구(陝甘邊區) 유격대 총지휘부 정치위원으로 임관해, 관중지구 사령부 정치위원, 섬감녕(陝甘寧)군구 정치위원, 서북군구 정치위원 등 1950년 9월 중국공산당 당선전부 부장으로 전직할 때까지 무려 18년 6개월간 정치위원을 겸했다.

1979년 덩샤오핑(당시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은 당시 시중쉰 부총리의 아들 시진핑을 중국 최고권력의 핵심중의 핵심, 당중앙군사위 판공청 비서(한국의 중령급에 해당)로 발탁, 국방부장겸 중앙정치국위원을 보좌하도록 함으로써 차세대 군부 및 당정 지도자 수업을 받게 했다.

아래는 중국공산당 홈페이지에 공개된 시진핑의 군부 수뇌 경력이다.

1.중앙군사위 판공청 비서(현역 1979-1982)
2.정딩(正定)현 무장부대 제1정치위원(1983-1985)
3.닝더(宁德)군구 당위 제1서기(1988-1990)
4.푸저우(福州)군구 당위 제1서기(1990-1996)
5.푸젠(福建)성 미사일예비역사단(高炮预备役师) 제1정치위원(1996-2002)
6.난징군구(南京军区)국방동원위원회 부주임 겸 푸젠(福建)성국방동원위원회주임(2000-2002)
7.저장성군구당위제1서기, 저장성 국방동원위원회 주임 (2002-2007)
8. 중공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2010—2012)
9. 중공중앙군사위원회 주석(2012~ 현재)

이처럼 시진핑의 경력은 ‘군사위 정치위원에서 to 군사위 정치위원이다. 그의 1979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40년 정치생애 중 군사위(정치위원)를 떠나 당(黨)과 정(政)만 맡았던 시기는 푸젠성 샤먼시의 부시장으로 재직한 3년간(1985-1988년)뿐이다.

덩샤오핑이 당군사위 주석을 사임한 1989년 이후 재임했던 모든 정치국상무위원중에서도 군·당·정(軍·黨·政) 삼권 통수권자 경력을 보유해온 자는 시진핑이 유일무이하다. 즉, 시진핑 역대급 스팩의 특징은 정치위원을 중심으로 당·정 직위는 겸직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시진핑 절대권력의 비밀이다.

후진타오 집권 2기인 시진핑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취임하던 2010년 10월 15일에 이미 중국의 군권은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권력 이동되었다. 요컨대 후진타오가 2012년 11월 15일 시진핑에게 군사위주석까지 넘겨준 까닭은 국내외신에서처럼 '상왕정치(?)'를 펴왔던 장쩌민(사실은 행정구역을 개편해서까지 후계자로 발탁해주고 후원해준 후진타오의 고향 선배)과 동반자살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시진핑이 이미 2년 전부터 군사위 부주석으로 군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