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조선과 경향, 화난 이유가 달랐다…'양승태 압수수색'

2018-10-01 17:46
[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전정권 '사법농단의 몸통' 차량 압수수색한 날…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비교

[양승태 전대법원장]



오늘 아침(2018년10월1일) 가장 눈에 띄는 기사는, 양승태 전직 대법원장의 차량을 검찰이 압수수색한 일이네요.

# 조선과 동아가 가장 비중있게 처리

동아일보에서는 1면에 4단에 걸친 톱으로 썼고, 조선일보는 사이드로 썼지만 역시 4단으로 부각시켰습니다.이들 신문은 1면 스트레이트 3면 톱 형식으로, 정색을 하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1면에 1단으로 처리했고, 8면에 해설로 다루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1면에 다루지 않았지만 2면에 부각시켰습니다. 해설은 따로 쓰지 않았군요. 한겨레의 경우는 12면 사회면 톱으로 썼습니다. 조중동과 경향은 모두 이 기사를 사설에 다루고 있는데, 한겨레는 사설로 쓰지 않은 것도 눈에 띕니다.

각 신문의 헤드라인을 살펴볼까요.

경향신문 :
1면1단 '사법농단' 양승태/검찰, 첫 압수수색
8면 검찰, 100일만에 '사법농단 몸통'양승태 강제수사 나섰다
사설(3) 마침내 '사법농단 몸통'양승태로 향하는 수사

동아일보 :
1면톱 검찰, 전직 대법원장 첫 압수수색
3면 '전사법수장 강제수사'법원도 용인...검 '피의자 양승태'적시
영장발부 판사, 지난달 임명된 검 출신
윤석열(서울중앙지검장) "법원 죽이기 아닌 살리려는 수사"
사설(3) 초유의 전대법원장 압수수색, 사법부 자성과 쇄신 힘써야

중앙일보 :
2면 양승태.고영한.박병대. 차한성...전직대법수뇌 압수수색
사설(2) 양승태, 전직 사법부 수장의 책임감과 품격 보여줘야

조선일보 :
1면 4단 사상초유의 전대법원장 압수수색
3면 전정권 사법수장까지 적폐수사...."삼권분립 흔드는 선례될 우려"
검찰출신 판사가 영장 발부...지난달 초 영장재판부에 새로 투입(명재권 부장판사)
사설(3) 전직 대법원장이 압수수색 당하는 나라

한겨레 : 
12면 '사법농단 정점'양승태 전대법원장.행정처장 3인방 압수수색

# 양승태 압수수색 관련 팩트 정리

우선 기사의 팩트를 한번 정리해봅시다.

(1)양승태 압수수색 영장발부

지난 6월 이후 전직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은 10여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준 것입니다.

(2)법원, 차량만 압수수색 허용

양승태의 경우, 자택과 차량에 대해 모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을 했으나, '차량'에만 허용을 해줬습니다. 자택에 대해서 허용하지 않은 것은 '주거의 안정을 해칠만큼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3)검사출신 명재권, 지난달 영장판사 투입후 심사 맡아

이번 영장 발부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지난달 초 서울중앙지법이 3명이던 영장전담판사를 1명 더 늘리면서 명재권 부장판사를 투입했는데 이 분이 이번에 영장 심사를 맡았다고 합니다. 명재권은 법조경력 20년 중 11년을 검사로 지낸 이력이 있습니다.
 


 # 조선과 동아의 같으면서도 다른 보도

전정권의 적폐청산의 한 가닥으로 진행되어온 '사법부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듯한 이 뉴스에 대해, 신문들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듯 합니다.

전직대법원장 양승태의 차량을 검찰이 압수수색한 일에 대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전직대법원장을 압수수색한 일이 사상초유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신문은 이 일의 '의미'를 앞세웠습니다. 검찰이 사법수장을 수사하는 것은, 그 내용을 차치하고 보면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시스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 양승태를 향해 칼끝 세운 동아

하지만 두 신문은 문제제기의 실마리는 같았지만, 해설과 사설에서 갈라서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전 사법수장의 강제수사'를 법원이 용인했으며, 검찰이 '피의자 양승태'라고 못박은 점에 대해서도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수사가 상당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설에서도 양승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전직 사법부 수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 청와대와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 자체가 사법부로서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판결을 흥정 수단으로 여기는 듯한 행정처의 문건은 사법부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이 신문은 사법부가 신뢰를 되찾으려면 의혹의 진상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검찰에게도 전방위 수사 대신 외과수술 하듯 정교한 수사를 하라고 주문해 균형을 맞추는 군요.

# 검찰 수사에 칼끝 세운 조선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원론'을 방패로 이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힘을 기울입니다. 전정권 사법수장까지 적폐수사를 하기 시작했다면서, 전문가의 입을 빌려 "삼권분립을 흔드는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냅니다.

검찰이 전직 대법관과 행정처장들을 향해 두고있는 혐의는 직권남용죄인데, 이걸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는 법조계의 지적을 거론합니다. 검찰이 재판거래의 근거로 내놓는 행정처 문건은 검토에서 끝나고 실행되지 않은 게 대부분인지라 부하직원을 압박한 흔적이나 의도한 결과물이 없을 경우엔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차진아 고려대교수의 입을 빌려 "행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장영수 고려대교수는 "재판거래라는 의혹자체가 확인된 것이 아니었고 부풀리기가 심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주장들의 힘을 내세워 조선일보는 양승태 압수수색을 비판하고 있습니다.(이런 내용들은 이 신문의 주장이며 사실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라는 걸 언급해야 할 것 같군요.)

사설에서는 더욱 강경합니다.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상대로 강제수사를 벌이는 것은 전례가 없을 뿐더러, 사법부가 독립돼 있고 법치를 한다는 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실제 외국에서도 그런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일의 결과로 재판이 불신받고 법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신문은, '재판거래'의 사실여부 자체를 '근거가 박약한 의혹' 수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뉴스를 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 양승태의 품격 거론하며 '고해'를 압박하는 중앙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기울이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기사로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까요? 2면에 썼는데, 양승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전직 대법관을 포함해 4명의 이름을 모두 거명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대한 해설은 거의 담지 않았고, 팩트들을 나열해 독자가 직접 판단하도록 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이 신문의 사설은 묘한 측면에서 인상적입니다. 2018년 9월30일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을 겪었다면서, 양승태 전대법원장에게 책임지라고 다그치고 있습니다. '양승태, 전직 사법부 수장의 책임감과 품격 보여줘야'른 제목의 사설을 직접 들여다 봅시다.

"양 전대법원장은 작금의 사법부 위기는 자신 때문에 비롯된 점을 인식하고 사태해결을 위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가 상고법원 설치라는 업적을 만들기 위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을 동원해 정치권과 언론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했던 의혹은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양 전대법원장은 정치보복이라는 해묵은 주장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사설은 저렇게 입장을 밝히는 일이 사법부 수장을 지낸 분의 품격과 권위라고 주장합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시작했다는 기사에서, 더 봉변 당하기 전에 모든 책임을 지라는 듯한 '교사'로 느껴지는 대목이네요. 양승태 개인에게 리더의 자세를 운운하며 전정부 때 이뤄진 사법부 잘못을 고해하라는, 언론의 직격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언론이 문제를 지적하고, 태도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마치 스스로 나서서 양승태를 심문하는 검찰이라도 된 것처럼 압박과 회유를 하는 듯한 인상은 언론의 '오버'로 보이기도 합니다.

# 물증과 진술 충분하다며 수사 몰아붙이는 경향

경향과 한겨레는 이 기사를 보도하는 태도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향의 경우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쪽입니다. 1면에서는 팩트를 다루되, 전직대법원장과 대법관들에게 자택 압수수색이 대부분 불허된 점을 지적합니다. 이런 기조는 8면 해설기사에서도 이어집니다. 이번에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은, 100일만에 사법농단 몸통의 강제수사가 시작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양승태가 퇴임 후 이용한 차에 무슨 자료가 있겠느냐면서 자택 압수수색을 제외하고 차량만 영장을 내준 것에 대해 법원이 명분만 차리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검찰 관계자의 입을 빌어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설에서도 '사법농단 몸통'수사 진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밝히면서 검찰에게는 '이번 모멘텀을 놓치지 말고 조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라'고 채근하고, 법원에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성할 때'라고 압박합니다. 100일 넘는 검찰수사를 통해 다수의 물증과 진술이 축적돼 있다면서 '타조가 모래밭이 머리 파묻듯 외면해서야 되겠는가'고 질타합니다. 다른 신문에서는 증거가 박약하다고 하고, 이 신문에서는 다수의 물증과 진술이 축적되어 있다고 하니, 신문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위해서 같은 사실도 전혀 다르게 읽어내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기'의 취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 가택은 빼버린 압수수색 기사...보도 가치 작다고 여긴 한겨레

한겨레의 경우는 압수수색을 허용했지만, 차량만으로 한정한 것은 수사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아예 1면 기사감도 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 같네요. 사회면에서 다뤘습니다. 팩트 중심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한 뒤에 신임 명재권 영장판사가 주거지 압수수색 영장을 거부한 것에 대해 '생색내기 영장 발부'라는 비판을 달았네요.

전체적으로 보자면,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대해 '삼권분립을 흔드는 위험한 침범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동아일보는 '사법부 수사가 궤도에 올랐으니 법관들도 이젠 정신차려라'는 주장이며, 중앙일보는 '양승태, 그대가 총대를 메고 책임지라'고 훈수를 둡니다.

# 하나의 사안에, 제각각 반응하는 프리즘 언론

경향과 한겨레는 '사법농단'의 몸통이나 정점의 수사에 들어갔다는 점을 강조하며, 왜 자택수사를 못하게 해서 법원이 끝까지 몽니를 부리느냐고 압박하는 관점을 보이고 있네요. 경향은 '기사 적극표출'쪽으로 편집했고, 한겨레는 법원측의 압수수색 영장이 생색내기라는 인식에서 구석진 곳에 기사를 배치했군요. 같은 사안을 보는, 5색의 편집은 대한민국 언론들의 진지(陣地)를 드러내는 관점의 프리즘이라 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니 큰 소리를 지른 신문, 말수를 아예 줄여버린 신문. 양쪽이 다 화가 난 건 맞는데, 서로의 이유가 달랐군요. 한 신문은 상고법원 관련 언론플레이가 자꾸 어른거리는 상황이라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는 것이 불편했을 수 있고, 한 신문은 법원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나뭇잎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인식에서 '스팀'이 차올랐을 수 있겠네요.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