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불 꺼진 신도시’ 늘리지 말고, 강북 균형개발하라
2018-10-02 05:00
수도권의 집값은 4, 5년 동안 계속 오른 데다 강력한 9‧13 부동산 대책이 발동하면서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같다. 수도권이라고 집값이 다 오른 것은 아니다. 새 정부 들어 강도가 높아진 다(多)주택자에 대한 규제의 부작용으로 ‘똘똘한 집 한 채’가 쏠린 강남을 중심으로 여의도, 용산, 마포, 성동, 분당, 판교, 과천, 목동 등 제2 서브권만 집값이 뛰었다.
수도권 중에서도 공급 과잉의 인천, 고양, 의정부 등지에서는 집값이 오히려 떨어졌고 동탄에는 아직도 불 꺼진 빈집이 많다. 정부는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을 비롯해 3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서초 우면·내곡, 강남 세곡, 송파 오금동, 고덕 강일 등에도 공공택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서울시가 그린벨트 해제를 반대해 강남 인접 지역에서는 택지 공급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도 불 꺼진 집이 많은 지역에 신규 주택을 과다 공급하다 보면 강남이 진앙(震央)인 수도권의 집값을 안정시키지도 못하고 엉뚱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불 꺼진 집 400만 가구가 새로운 경제·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비혼(非婚)과 저출산 현상이 일본보다 더 심각한 한국에서 눈앞의 부동산 가격을 잡을 목적으로 수도권 지역에 공동 주택을 무계획·무제한 공급하는 것은 미래의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다. 일단 수도권 집값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장기적인 주택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강남에서는 어디서나 몇 백m만 걸어가면 지하철 역이 있고 SRT가 들어오고 GTX도 뚫리는데, 강북과 서남권 관악에는 지하철이 안 들어가는 곳이 많다. 여의도에는 50년을 넘겨 쇳물이 나오는 아파트도 있다. 이런 지역의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재개발을 허용하면 주거환경도 개선하고 여유계층이 선호하는 공급이 꽤 늘어날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으로 생기는 이익은 공익과 사익의 균형점을 찾으면 될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성동구치소 부지에 아파트를 짓고 그린벨트를 해제해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당첨자들에게 로또만 안겨줄 뿐 장기적으로 보면 수도권의 거주 환경을 악화시킨다. 공원이나 일자리 창출, 연구개발 센터로 활용할 수 있는 땅을 닭장 같은 아파트로 몽땅 채우겠다는 것인가. 몇 차례 거듭된 부동산 대책에도 불길이 잡히지 않자 정부가 있는 곳 없는 곳 다 끌어대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선 인상을 준다.
평당 1억원을 넘긴 강남의 집값은 당분간 오르지 않겠지만 강남에 집 한 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욕구가 커지면 숨 고르기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강북의 재개발·재건축을 용이하게 해주고 교통·교육·공원 등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강남에 몰린 수요를 분산시켜 주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정부가 서울시의 강남·북 균형개발 정책 발표가 집값 앙등을 부추겼다고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강남에서 미니 신도시의 적지를 찾지 못하면 제2 서브권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그나마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길이다.
9‧13 대책으로 일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이 크게 높아졌지만 일가구 일주택자의 경우 세금 폭탄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일가구 일주택이라도 고가주택에 사는 사람은 지방세와 국세를 적정한 수준에서 더 내는 것이 맞는다. 국민정서법이나 집값 안정에 비춰서도 그게 맞는 방향이다. 일부 언론의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은 강남 독자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나도 강남 살지만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며 강남 지역 아파트의 세금 일괄 인상에 반대한 것은 철없는 발언이다. 이러니 보수세력으로부터 ‘강남좌파’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기실 새 정부 들어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의 군불 때기로 부동산 규제를 대폭 해제한 데도 원죄(原罪)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