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한국판 '평화 프로세스'의 기적
2018-09-19 16:55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했다.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것이 주요 골자다. 지난 4월 판문점 공동선언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한 것이다. 다른 이념을 앞세워 반목을 거듭하던 두 정부가 평화를 찾은 사례는 과거 독일 통일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식민 경험과 남북 간 내전 등 역사적 상흔을 겪은 점에서는 오히려 아일랜드와 가깝다.
아일랜드공화국(남쪽)과 북아일랜드(북쪽)는 1998년 신교계 영국과 가톨릭계 아일랜드 간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통일을 강제하기보다는 칼과 총은 내려놓고 평화와 공존을 향해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다. 올해로 벌써 체결 30주년을 맞는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았지만 양측 간 교류는 문제없이 이뤄진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국경 사이에 '철조망'이 없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그 흔한 실선조차 없이 커다란 비석 두 개가 도로 양측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비석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착하는 '테러 신변 유의' 같은 외교부의 문자 메시지만이 국경 이동을 알려줄 뿐이다. 이곳으로 안내해준 산드라 뷰캐넌 박사는 "남북 아일랜드 사람들과 물류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 걸음 더 내디뎠다고 해서 평화 통일까지 기대할 수는 없을 터다. 다만 갈 길이 멀더라도 아일랜드 모델을 거울 삼아 경제협력부터 차근차근 접근할 수는 있을 것이다.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는 체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 주요 분쟁 지역에서는 아직도 평화의 길이 요원하기만 하다. 한반도가 불과 1년여 만에 평화 무드에 접어든 데 대해 외신이 놀라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국판 '평화 프로세스'의 기적에 대한 기대감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