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리는 터키, 러시아-중국과 손잡나
2018-08-13 11:11
터키 리라화 가치가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필요에 따라 입장을 굽히거나 타협하던 지금까지의 ‘실용 외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러시아나 중국과의 연대를 염두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리라 가치는 이달 들어 달러 대비 40% 가까이 폭락하면서 사상 최저치 경신을 이어가고 있다. 터키 정부가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구금하고 석방 요청을 거부하자 미국이 1일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에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를 가한 데 이어, 10일에는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각각 50%, 20%로 두 배 높이면서 경제적 보복을 가한 영향이다. 리라 폭락으로 터키 기업들의 외화부채 상환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터키경제가 금융위기를 치닫고 있다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흑해 연안 트라브존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서 새로운 동맹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터키를 포함해 전 세계를 상대로 경제전쟁을 벌인 나라(미국)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시장으로, 새로운 협력관계로, 새로운 동맹으로 옮기는 것으로 답할 것”이라면서 “누군가 문을 닫으면 다른 누군가는 문을 연다"고 강조했다.
글로벌소스파트너스의 아틸라 예실라다 컨설턴트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옵션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FT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에 일부 차관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 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절대권력 강화를 두고 서방의 비판이 고조되면서 터키는 러시아와 밀착해왔다. 터키는 러시아로부터 S-400 방공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최근 영국에서 벌어진 이중 스파이 암살시도와 관련해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반미 감정이 커진 상태다. 푸틴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10일 전화통화를 갖고 경제와 국방 등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공동전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13일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이틀 동안 터키를 방문한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방문에서 시리아 및 중동 불안이 집중 논의될 것이라면서도 양국 경제관계 강화에 대한 논의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터키가 연대를 모색할 또 다른 국가로 카타르를 집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단교 사태 이후 카타르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터키와 협력을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카타르 정부홍보부는 1일 “터키는 가깝고 믿을 만한 동맹”이라면서 “우리는 터키 경제의 건전성을 완전히 신뢰하며 터키에 대한 투자도 평소처럼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터키가 이들 비서방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러시아도 미국 제재로 루블화가 급락하는 등 나름의 경제 문제에 직면했고, 중국 역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열세에 있는 만큼 터키를 지원함으로써 미국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는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카타르의 경우엔 사우디와의 갈등 관계에서 미국의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스탄불 소재 마르마라 대학교의 베룰 오즈칸 국제관계학 교수는 FT에 “서방 동맹국들과 관계를 끝낼 경우 터키는 중국, 러시아, 카타르로부터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