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이런 여름은 없었다
2018-08-02 13:42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런 여름은 없었다. 폭염이 절정에 달한 8월 1일 점심하러 나가 몇분 걸으면서 현기증이 났다. 도로가 지글지글 끓는 듯한 착각이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국립공원에 갔을 때의 기억을 불러냈다. 숨을 쉬고 몇 초 서 있는 것조차 어렵던 그곳처럼 내가 사는 한반도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더위 공포가 밀려 왔다.
8월 1일 대한민국은 더위 역사를 새로 썼다. 이날 오후 1시 30분 이미 서울은 38.5도를 넘어서면서 종전 최고 기록인 1994년 7월 24일의 38.4도를 돌파했고 두 시간 후인 오후 3시 26분쯤에는 낮 최고기온이 39.6도를 기록했다. 1907년 서울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1년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이다. 이날 대한민국에서 기온이 가장 높았던 곳은 홍천. 무려 41도를 찍었으니 기상관측기기의 오작동이 아닌지 기상청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확인해볼 만도 했다. 이날 한반도는 그야말로 펄펄 끓었다. 35도 이상이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폭염지도에는 해안가와 제주를 제외한 전국이 진한 붉은색이다. 40도를 넘는 검은색 지역도 중부 내륙 중심으로 무려 43곳에 달했다.
40도는 사람 체온을 훨씬 웃도는 살인적인 기온이다. 한반도에서 사막이나 중동을 방불케 하는 이런 더위는 정말 낯설다. 왜 이렇게 더운 걸까. 기상청 설명대로 한반도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려면 여러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는데, 그 어려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올해는 장마가 이례적으로 일찍 끝났다. 평년(1981∼2010년) 중부지방의 장마 기간은 32일에 달했지만, 올해는 16일에 불과했다. 올해 가마솥더위의 출발점인 7월 11일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물러난 뒤 한반도를 둘러싼 기압 배치는 폭염을 부채질하는 구조다. 우선 여름철 한반도 더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북태평양 고기압 자체가 서태평양의 활발한 대류 활동으로 더 세진 터였다. 여기에 지난 겨울과 봄에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더워진 '티베트 고기압'이라는 대륙 열적 고기압이 가세했다. 유례없이 건조해 뜨겁게 달아오른 몽골과 만주의 열기도 한반도로 넘어왔다. 결국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협공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폭염기단이 장악한 곳은 구름도 잘 끼지 않아 뻥 뚫린 하늘에서 작열하는 태양에너지가 지상에 불을 뿜어내는 형국이 된다. 한반도가 가마솥이 된 이유다.
여기에 12호 태풍 ‘종다리’도 더위를 수그러뜨리기는커녕 부채질했다. 종다리가 만든 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서쪽 지방을 후끈 달구는 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대구 같은 가장 더운 곳보다 홍천 등 영서 지방과 서울이 더 더운 이유가 의아했는데, 이런 독특한 기압 배치 탓이라니 수긍이 갔다.
기상청에 따르면 40도까지는 아니더라도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나라 기상재해 통계를 보면 태풍이나 집중호우보다 폭염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앓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5월 20일부터 7월 31일까지 2355명의 환자가 생겼고, 이 가운데 29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여름(5월 29일∼9월 8일) 환자 수 1574명을 이미 넘어섰고, 사망자도 2011년 감시체계를 운영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 않다 해도 더위 취약계층은 적지 않을 것이다. 에어컨 아래에서 ‘전기료 걱정 없이 에어컨 빵빵 트는 팁’ 기사를 보다가 잠시 멈칫했다.‘하루종일 에어컨 찾아 삼만리, 더위 피난민’ 기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전국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이 80%대라는데, 우리 주위에는 적어도 20%의 가정이 에어컨 없이 살고 있다. 정치권에서 폭염을 법정 재난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안과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데, 우리 모두 ‘냉방복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더웠던 1994년 폭염으로 무려 3384명이 사망했는데, 기록을 경신한 2018년 현재 폭염 사망자가 줄어든 데는 에어컨 보급률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 더위는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허덕인다’는 속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밤에도 30도를 웃도는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만 더운 것도 아니다. 폭염은 세계적 현상이다. 적도에서 중위도 중심부가 대부분 40도에 가깝고, 중동·아프리카 등은 50도에 육박한다. 심각한 것은 기록적인 더위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를 근본 원인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탄소배출을 이어가면 50년 뒤 2070년에는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화베이 평원에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미국 MIT대학의 경고가 나오는 판이다. 이 더위에 섬뜩하다.
섬뜩한 분석은 더 있다. 폭염과 혹한을 부르는 근본 원인이 지구온난화로 같다는 것이다. 우리도 불과 반년 전에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를 겪었던 터다. 사람을 살기 어렵게 하는 혹한과 폭염에 대한 공포, 그 공포를 없애는 방법은? 탄소배출 줄이기,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여러 이유로 잘 실천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더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