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인물전] 기행을 전통으로 바꾼 '의정부고 학생들'

2018-07-17 16:49

 1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졸업사진 촬영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으로 분장한 학생들이 질문을 받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제공=연합뉴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이맘때면 인터넷 커뮤니티는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의 졸업사진으로 시끌벅적해진다.

16일 경기도교육청이 진행하는 자체 방송 프로그램 '레알 스쿨'은 의정부고를 찾아가 학생들의 졸업사진 촬영 현장을 생중계했다.

학생들은 기발하고 화려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분장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패러디하거나 평창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거미손으로 활약한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조현우로 분장해 카메라 앞에 섰다.

졸업사진 촬영에 임한 학생들은 "새벽부터 분장 준비했어요", "여러분 의정부고 자랑스럽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수줍은 듯 이야기했지만, 의정부고에 대한 자부심도 잃지 않았다. 

김예성 학생회장은 "(졸업사진) 역사는 2009년부터 선배들이 기존 졸업사진을 재미있게 바꿔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했다. 정치·사회·문화 현상을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했고,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해줘서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기행(奇行)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누리꾼들은 "약을 먹고 찍었냐"는 반응을 보이며 일회성 사건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의정부고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을 만드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생들의 풍자나 분장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 학교 측은 사전검열과 외부인 출입 통제, 학생들의 SNS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김예성 학생회장은 "기존의 자유로운 촬영 분위기가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어서 올해는 학생회와 교직원이 협의해서 학생회 학급회의에서 어떤 사진을 찍을지 상의해서 준비했다"고 밝혔다.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기업은 자사 광고모델을 패러디한 졸업생에게 관련 제품을 선물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졸업사진 100여점을 전시한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레展드'전이 열리기도 했다.

의정부고를 따라서 이색 졸업사진을 찍는 학교들도 속속 등장했다. 기행이 전통이 되는 순간,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참신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기행은 쉽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내지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통은 어렵다. 여러 사람이 함께 뜻을 맞추고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이유는 기행이 전통이 되는 순간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