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살림집 엿보기] 南北 해빙 분위기...북한 부동산 시장부터 이해해야
2018-07-16 15:30
북한의 주택시장을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게 된 시기는 배급망이 붕괴된 1990년대 말 이후다. 사회주의 배급체계인 북한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이 없지만, 1990년대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구소련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가 이어지면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다.
이에 사람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물건을 팔러 시장에 나오면서 ‘장마당’이 생겨났다. 이는 결국 주택을 사고 파는 데까지 나아간다. 실제 2003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장마당을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현재 북한 전역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장마당은 500여개에 이른다.
이로 인해 생겨난 것이 은행 역할을 하는 ‘돈주’다. 권력층으로부터 무역허가를 받은, 일명 ‘와크’라고 불리는 무역기관 종사자들과 함께 돈주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서 북한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을 사고 파는 데까지 진화했으며, 자금을 모아 아파트를 지은 뒤 파는 일종의 디벨로퍼 역할까지 하고 있다.
즉, 주택에 살 수 있는 입사증을 사고 파는 형태로 주택을 거래하는 것이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2000년대 들어 시장 체계가 잡히고, 화폐 개혁과 김정은 정권이 들어오면서 중국처럼 주택의 사용권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며 “부동산을 ‘소유’한다는 변화는 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중개업자도 있다. ‘데꼬’라고 불리는 이들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수요자들을 모은다. 집이 완성되면 입사증을 이전해 주기로 약속하고 돈을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입사증은 시장에서 집이 완공될 때까지 반복 거래되면서 일명 ‘프리미엄(웃돈)’이 붙는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유한 계층이 사는 동네와 빈곤계층이 사는 동네로 지역이 나뉘게 됐다. 신의주의 경우 관문·청송·본부·신원·백사·하하·송남·개혁·남중동에는 부유한 계층이 살고 있고, 본부·관문동에는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 개혁·송남·채하동은 유통업 밀수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본부동에는 도당 아파트가 있어 간부들이 밀집해 있다. 신의주 시가지의 동편과 서편은 홍수 침수가 잦아 빈곤계층이 거주하고 있다.
다주택자도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 없는 사람에게 200~300달러(약 22만~33만원)를 주고 명의를 빌려 집을 구매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 중에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함경북도 회령에는 2015년 기준 32가구의 화교가 56채의 주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를 개조해 되파는 경우도 있다. 자유아시아 방송에 따르면 2010년 1만5000달러(약 1700만원)에 거래됐던 신의주시 역전동의 방 두 칸짜리 아파트가 5년 뒤 3만 달러(약 3400만원)에 거래되자 몇 채씩 사들인 사람들이 있다.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서 통일 이후 땅과 주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관심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의 ‘북한 주택사업 중장기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의 북한 인구와 1인당 국제 주거면적 기준을 고려해볼 때 2030년까지 연간 신규주택이 23만 가구가 공급돼야 한다. 아파트를 건설하려면 2020년부터 30년 동안 총 122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독주택까지 포함할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최고 120조원이 더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비 차원에서 북한의 주거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 연구위원은 “통일의 개념에는 완전한 통일도 있지만 체제가 공존하는 개념도 있다”며 “1990년대 이전 북한의 상황과 비교할 때 ‘소유’라는 개념이 생긴 지금은 ‘체제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좋은 신호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