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당대표 끝까지 완주" 박범계의 '전력어인' 도전
2018-07-04 15:27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56·대전 서을)이 4일 또 한번의 도전을 선언했다. 이번 도전은 '유능한 혁신가'로서 혁신과 공정의 돌풍을 일으키는 민주당 차기 당 대표가 되는 것이다. 박 의원은 민주당 차기 당권 주자 가운데 출마 선언을 한 '첫 주자'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당원과 대표가 혼연일체가 돼서 당의 혁신을 이뤄가고 10년, 20년 뒤 대한민국을 준비해야 한다"며 당 대표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만 보이고 민주당은 보이지 않는다는 당원들의 따끔한 지적이 있다. 이 애정 어린 충고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일 잘하는 혁신가'로 지칭, "전당대회에서 공정하고 혁신적인 돌풍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문재인)'에 속하지만, 재선인 그가 쉽게 당 대표 고지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고민이 많았다. 소위 '뼈문'으로 불리는 의원들부터, '친노' 좌장인 이해찬 의원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쟁쟁한 '친문' 당권 주자들이 물밑에서 교통정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이에 개의치 않고 완주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후보 단일화는 분열의 정치이고, 컷오프와 본선 경선이 단일화로 가는 길"이라며 "박범계의 길만 이야기하겠다. 절대 완주하겠다"며 출마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박 의원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시골(충북 영동) 출신, 장애를 가진 부모, 아버지의 행방불명, 서울로의 전학 등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지나 고교 시절 '방황'을 거듭했고 결국 1980년 중퇴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1985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 늦깎이 법대생으로 1991년 사법시험(33회)에 합격해 판사의 길을 걸었다. 1994년부터 서울지법 남부지원, 대전지법, 전주지법 판사를 지냈다.
정치권 입문 때도 그의 도전정신은 빛났다. 박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2002년 노무현 대선 후보 지지율이 바닥을 칠 당시 돌연 법복을 벗어던지고, 노무현 캠프로 들어갔다.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 단일화를 두고 '반노' 및 '비노'의 '노무현 흔들기'가 한창이었기에 그의 합류는 노 후보에게 큰 힘이 됐다. 덕분에 '386세대 판사'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에서 특별한 상징성을 갖기도 했다.
국회에는 도전한 지 8년만인 2012년(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주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당론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대표발의하는 등 사법개혁 이슈 전문가라는 평을 받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는 엄숙한 국정조사장에서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인간적 모습을 보이면서 '박뿜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5·9 대선 때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중앙선대위 종합상황본부 2실장과 대전선거대책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캐스팅 보트'인 충청 표심 공략을 주도했다.
'사법개혁 전문가'로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입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중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며, 최근에도 청와대가 부분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박 의원의 입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 의원은 이와 관련해 "당 대표 출마하는 사람이 좌고우면하거나, 꿈꾸거나, 상상하거나 셈하거나 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오직 전력어인(全力於人), 전력과 진심을 다해 전당대회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