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크로스' 들어선 신흥시장, 하반기는 더 암울

2018-07-01 12:53
신흥시장, 美통화긴축·글로벌 무역전쟁 역풍에 주식·채권·통화 '트리플 약세'
'동시다발 악재' 하반기에 더 거세질 듯…전문가들 "신흥시장 전망 더 깜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사진=AP·연합뉴스]


"신흥시장이 이미 '죽음의 십자로(death cross)'에 진입했다. 하반기 전망은 더 암울하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가 최근 전한 한 신흥국 ETF(상장지수펀드)시장 전문가의 경고다. 신흥시장의 상반기 실적과 하반기 전망을 종합하면 이미 직면한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올 상반기에 신흥시장을 괴롭힌 악재들이 더 강해지고 있어서다.

◆신흥시장에 동시다발 악재··· 주식·채권·통화 '트리플 약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신흥시장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통화긴축 바람과 이에 따른 달러 강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몰고올 역풍에 대한 우려가 취약한 신흥시장에서 글로벌 자금의 이탈을 부추긴 결과다.

주요 신흥국 증시를 반영하는 MSCI신흥시장지수는 2분기에 8.5% 하락했다. 분기 기준으로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 사태가 글로벌 시장을 뒤흔든 2015년 3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급기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주 약세장에 돌입했다. 전 고점에 비해 20% 이상 추락했다는 말이다. MSCI신흥시장지수는 상반기에 약 7.6% 떨어졌다.

신흥국 채권시장도 혼란에 휩싸였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내는 신흥시장 채권지수는 지난 4~6월 3.6% 하락했다. 상반기 낙폭이 5%가 넘는다. 금융정보업체 EPFR에 따르면 신흥국 채권시장에서는 지난주까지 10주 연속 자금이 순유출됐다. 그 사이 투자자들이 온전히 회수한 자금이 141억 달러(약 15조7000억원)에 이른다.

신흥국 통화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아르헨티나·터키·브라질 등 재정이 취약하고, 외채 비중이 높은 나라들의 통화 가치가 특히 급격히 떨어졌다. 그 결과, JP모건 신흥시장통화지수는 연초 대비 7.5%가량 하락했다.

티모시 애시 블루베이 자산운용 신흥시장 국채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신흥시장이 동시에 수많은 악재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美통화긴축·强달러·무역전쟁 우려 점증··· "상반기 더 암울"

신흥시장을 괴롭히는 동시다발 악재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주도하는 통화긴축(금리인상)과 달러 강세,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발 무역전쟁 등이다. 일련의 악재들은 하반기 신흥시장에 더 큰 역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연준은 올 들어 이미 두 차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곱 번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연준은 연내에 금리를 두 번 더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리인상 압력에 한동안 약세 행진하던 달러 강세도 두드러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저점인 2월 88.59에서 지난 주말 94.47까지 7% 가까이 올랐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는 신흥국의 달러 빚 상환 부담을 키우고, 글로벌 자금을 달러 자산으로 빨아들이는 요인이 된다.

문제는 연준의 통화긴축 압력이 더 세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연준이 물가 척도로 삼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지난 5월 마침내 2%에 도달하면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9일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 지표가 연준 목표치인 2%에 도달한 건 2012년 4월 이후 6년여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미약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이유로 금리인상을 머뭇거려온 연준이 금리인상의 강력한 명분을 되찾은 셈이다. 이는 달러 강세에도 더 큰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무역 공세에 주요국이 강력한 보복에 나서면서 무역전쟁의 전장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 수출 비중이 큰 신흥시장을 둘러싼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폭탄관세 조치에 보복조치를 이미 취했거나, 취하기로 한 나라(지역), 또는 보복을 검토 중인 곳은 △캐나다 △유럽연합(EU) △러시아 △멕시코 △중국 △터키 △인도(보복 규모 순) 등 7개국(지역)에 이른다. 이들이 보복관세 대상으로 삼거나, 삼으려고 하는 미국산 제품은 최대 3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트럼프 행정부의 반무역 강경책이 상대국의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자극하며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국제무역이 위축되면 각국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애시 애널리스트는 신흥시장의 상황이 아직 1990년대 말에 겪은 위기를 가리키고 있지 않지만,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 성장세를 위축시켜 원자재 가격을 떨어뜨리면 신흥시장에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