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강의 취재뒷담화] 누구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인가?
2018-06-06 14:25
- 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 특정 업종 근로자 퇴근후 카페에서, 몰래 사무실로 돌아와 잔무처리
- 특정 업종 근로자 퇴근후 카페에서, 몰래 사무실로 돌아와 잔무처리
하지만 기업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제조업체는 물론, 365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보안업체, 실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한 게임업체 등 대다수 업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인력과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해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여력이 없는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들은 폐업까지도 고려한다고 토로합니다.
근로자들의 상황도 마냥 녹록지 않습니다. 셧다운제를 실시하는 한 통신사 직원은 남은 잔업을 근처 카페에서 처리하는가 하면, 한 게임업체 직원은 하루 8시간 근무를 맞추다보니 집에까지 일감을 싸들고 오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한 직원은 퇴근시간에 맞춰 나갔다가 몰래 다시 들어와 일을 해야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비판합니다. 무엇보다 야근 수당 및 인센티브가 줄어지면서 전체 월급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 불만이 높습니다.
이에 기업들의 특성과 업종 환경을 고려한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주요 선진국들처럼 유연한 고용 환경을 구축한 뒤 제도가 정착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한민국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선결과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밀어붙이기식 정책 도입은 기업과 근로자를 옥죄는 규제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최장 2위에 달하는 '야근 공화국'으로 불립니다. 매년 300명이 넘는 근로자가 과로로 사망하고, 졸음운전으로 인한 대형사고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종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영세 기업들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되레 줄어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제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7~8% 상승하면서 영세한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늘리고, 저임금 계층의 일자리를 감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도입 이후 중소기업의 독과점만 심화됐으며, 대형마트 규제로 납품 업체들의 손해가 가중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실정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실업률은 4.5%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임시·일용직 근로자도 작년보다 11만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0년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해 재정 투자나 규제 강화 등을 통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 역시 정부 주도의 재정 투자에 소득 주도 성장론을 강조하고 있어 케인즈 철학과 궤를 같이합니다. 케인즈 이론은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과도한 복지와 과도한 정부 규제로 1970년 세계 불황을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정책 보완이 뒤따르지 않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이 같은 딜레마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습니다. 케인즈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린 모두 죽는다"고 주장했듯이 사회적 합의 없는 정책 추진이 향후 어떤 모습으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지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당장 눈앞에 그리고 있는 장밋빛 프레임을 걷어내고, 장기적으로 누구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인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