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홍준표, 전례 없는 당 대표 유세 중단…배경은?

2018-06-04 18:21
일선 후보들 ‘홍준표 패싱’ 논란…洪 “문-홍 대결 고착화”
“선례 찾아봐도 없을 것”…“정치적으로 더 악재” 지적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서민경제 2배 만들기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6·13 지방선거 지원 유세 중단을 선언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의 대표가 유세 중단을 선언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 대표는 4일 지방선거 유세에는 나서지 않은 채 여의도 당사에서 ‘서민경제 2배 만들기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비판에만 매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날(3일) 페이스북을 통해 유세 중단을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추가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홍준표 패싱’ 지적이 일었던 만큼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홍 대표는 지난달 3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지난 2일까지 서울, 충남, 부산, 경북, 경기, 인천 등을 차례로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일선 후보들은 홍 대표의 방문을 피했다.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 등은 홍 대표가 찾아왔음에도 합동 유세에 나서지 않았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이철우 경북지사 후보만 홍 대표와 합동 유세에 나섰을 따름이다.

‘남북 위장 평화쇼’나 ‘창원 빨갱이’ 발언 등 홍 대표가 연이어 설화(說禍)를 일으킨 만큼, 홍 대표와 ‘한컷’에 실려도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는 결국 3일 예정된 일정을 취소한 채 여의도 당사에서 비공개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원 유세 중단을 선언했다. 명분은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가야 할 관심이 자신에게 쏠린다는 것을 내세웠다. “내가 유세에 나서니 문-홍 대결로 고착화되고, 이번 선거가 깜깜이 선거가 된다는 일부 후보들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판단이 들어 내일부터 나는 유세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후보들뿐 아니라 시민들의 '경적 시위'도 이번 유세 중단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홍 대표가 부산 해운대에서 유세를 진행하던 도중 지나가는 차들이 경적을 수 차례 울렸다. 홍 대표의 유세가 중단됐고, 그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어 “서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이런 차들이 있네”라며 “반대하면 그냥 지나가면 되지, 서울에 꼭 강북에 가면 저런 차가 많아요”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 일로 측근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말고도 여러 곳에서 이런 일이 반복됐다. 홍 대표를 향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전문가들은 당 대표의 선거 유세 중단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통은 선거를 대비해서 대표를 새로 뽑아서라도 대응한다. 아마 선례를 찾아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어떤 선거든 선거는 늘 당 지도부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사안이다. 어찌 됐건 최선을 다하고 전력투구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아주 특별한 경우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또한 “(당 대표 유세 중단은) 제 기억으로는 없다”고 밝혔다. 

선거가 시작되면 당 지도부는 총력을 기울여 유세에 나선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치적 영향력 상실은 물론 사퇴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총선 새누리당 패배 당시에도 김무성 전 대표 등 지도부가 일괄 사퇴했다.

당 대표의 유세 중단은 언론 주목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자들은 대개 지도부의 동선을 따라 취재를 진행한다. 당 대표가 유세를 중단하면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기사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후보들의 얼굴을 알릴 기회가 줄어드는 셈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홍 대표와 달리 활발한 지원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부산을 거쳐 서울에서 수도권 합동 유세를 펼쳤고, 4일엔 문대림 민주당 후보와 원희룡 무소속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제주로 향했다.

전문가들은 홍 대표의 유세 중단이 한국당 후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공개적으로 유세 중단을 선언한 것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내놓았다.

이 정치평론가는 “홍 대표로 인한 마이너스 효과가 작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감소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며 “적어도 보수층이 결집하는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수층 가운데서 투표장에 안 나가겠다고 했던 투표 외면층도 투표 현장으로 나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전 정치평론가는 “막말 파문을 비롯해 지방선거에 악재가 되는 설화, 말로 이뤄지는 화근의 불씨를 홍 대표가 다 만들어 왔다”며 “그것을 결국 본인도 인식하고, 이것이 지방선거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스스로 확인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라리 그런 말(유세 중단)을 하지 않고 나서지 말아야지, 이렇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더 악재”라고 꼬집었다. 홍 대표의 유세 중단 선언으로 언론의 관심이 더욱 ‘홍준표 패싱’에 모일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