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미래 먹거리 합종연횡, IT·AI 업체가 주도
2018-05-29 17:33
- 미국·중국·일본 플레이어들이 주도, 우리 대기업은 뒤늦게 이에 합류 -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글로벌 먹거리 시장이 향후 3년 이상 갈 것 같지 않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품질의 상향 표준화와 소비자들의 교체 수요 주기가 길어지면서 신제품 출시 효과가 과거와 같지 않다. 평균 교체 주기가 2014년에는 1년 11개월이었으나, 2018년 들어서는 2년 7개월로 늘어났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러한 트렌드가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삼성과 애플이 주도하던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 연합군(화웨이·샤오미·비보·오포)에게 현저하게 밀리고 있는 판세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에게 이미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 유럽 시장에서도 이들의 추격이 거세고, 미국 시장에서는 판매 제한에 묶여 있어 그나마 선방을 하고 있는 편이다. 폴더블폰과 5G폰을 마지막 승부수로 던져보려고 하지만 시장의 수요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 같지 않다. 먹거리로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과 삼성·애플의 아성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를 감지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이미 다음 먹거리 선점을 위해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먹거리로 당장 부상하고 있는 것이 미래 자동차다. 전기차를 비롯해 수소차 등 가솔린 차량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이에 더하여 자동차 서비스 플랫폼인 공유자동차와 운전자가 차량을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시장을 몰아친다. 셰일오일 등의 가세로 화석 연료 차량의 수명을 더 유지해 보려는 저항도 만만치 않다. 공유자동차의 경우 과당 경쟁이나 조세회피 등을 문제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도 잇따른 사고로 상용화 속도에 다소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기는 하다. 갈수록 자동차가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전자제품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인공지능(AI), 5G,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클라우드 컴퓨팅, 3D 프린팅, 증강(AR)·가상(VR) 현실 등이 접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자동차뿐만 아니고 가전(家電),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시티, 스마트 홈, 스마트 팜 등으로 전이되면서 새로운 미래 먹거리의 탄생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미래 먹거리 경쟁에서 크게 눈에 띄고 있는 현상이 있다. 바로 유력 주자들 간의 합종연횡이다. 가장 빠르게 치고 나가는 기업들이 미국의 IT 혹은 AI 기업들이다. 중국 기업들도 이에 뒤질세라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수·합병 혹은 합종연횡에 소극적이던 일본 기업들마저 선봉에 치고 올라오고 있는 판이다. 이들보다는 다소 뒤늦었지만 우리 대기업들도 최근 이 기류에 신속하게 합류하고 있다. 합종연횡을 선호하는 데는 대체적으로 두 개의 이유가 존재한다. 하나는 미래 먹거리가 하나의 기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기술이 복합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술력 있는 기업들끼리의 짝짓기를 통해 압도적인 우위로 미래 먹거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석이다. 다른 하나는 거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을 하고 있는 점이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경쟁 맞수와 서로 협력을 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경쟁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생존 전략이자 우위에 서려는 선점 전략이다.
IT·AI 업체의 주도권 확보로 기존 제조업 글로벌 서플라이·밸류체인 붕괴 조짐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글로벌 연구개발(R&D) 주도권이 자동차·제약회사에서 IT·AI 업체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는 점이다. 2010년도에만 하더라도 GM·존슨앤드존슨·도요타·화이자 등이 선두권에 있었으나, 2017년 들어서는 아마존·구글·삼성전자·인텔 등이 선두로 올라섰다. 이는 자연스럽게 합종연횡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자동차·전자 등 전통 제조업체들이 리드하기보다는 오히려 IT·AI 업체들이 선도한다. 그렇다보니 자동차만 하더라도 전기차·자율주행자동차·공유자동차 등의 부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위상 하락은 글로벌 서플라이·밸류 체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가솔린 차량의 부품은 3만개에 달하나 전기차는 1만개에 불과하다. 레귤러하게 수요가 있는 애프터서비스 부품만 하더라도 전자는 2000개가 되는 반면 후자는 18개 정도에 그친다.
이처럼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주도하는 미래 먹거리 시장의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이 가히 충격적이다. 기존 제조업이 이에 버텨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한국의 제조업 혹은 서비스업이 이 거대한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시장에서 추풍낙엽처럼 패퇴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경쟁국들은 이를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대응한다.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합종연횡과 먹거리 선점을 위한 무한 경쟁에 기업만 최전선에서 버티라고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너무 안일하다.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민·관이 합동으로 총력 경주를 한다. 대기업은 그나마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우리 중견·중소기업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글로벌 시장의 흐름에 편승하여 창업을 포함하여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