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노쇼’ 피해 4조5000억원…예약보증금 법제화 ‘찬반갈등’

2018-05-28 09:00
공정위, 예약부도 위약금 규정 등 담은 개선안 마련했지만 아직 효과는 '미미'
예약보증금 법제화 두고는 '소비자 편익' 이유로 조심스런 입장이 다수

노쇼(No-Show·예약부도)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민간·정부에서 다양한 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변화는 미미한 실정이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음식을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당신들을 기다렸는데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오늘 저녁에만 16명 노쇼. 정말 부끄러운 줄 아세요. 당신들은 우리 레스토랑에 오시지 말아 주세요.”

스타 세프인 최현석씨가 2015년 자신의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고 나타나지 않은 노쇼(No-Show·예약부도) 소비자에게 가한 일침이다. 이를 계기로 노쇼가 사회 전반에 회자되며 이런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7일 한국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음식업·미용실·병원·고속버스·소규모 공연장 서비스부문의 연간 예약부도 발생률은 15%, 금액으로는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음식업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연간손실액은 1조8030억원, 고용손실은 4만3450여명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예약부도는 경제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꼽혀왔다. 이로 인한 손실이 극단적인 경우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 관련 법을 통한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됐다.

정부는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외식업 예약부도 위약금 규정 등이 신설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예약부도 위약금을 청구했다는 식당이나 이를 냈다는 '노쇼 고객'은 전혀 없는 상태다. 28일로 시행 석 달을 맞는 개정안을 두고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은 예약부도가 발생할 경우 예약보증금으로 받은 금액을 예약 취소 시기에 따라 위약금을 차등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상당수 사업장에서 예약보증금을 받고 예약을 진행하는 사례가 없고, 전화 등으로만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홍보팀장은 “(개정안 시행 이후) 아직 크게 변화한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외식업중앙회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음식점주들 입장도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모씨(가명)는 “우리같이 작은 규모로 장사하는 처지에서는 테이블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라며 “여기서 예약보증금을 받고 예약을 진행한다고 하면 결국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늘어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개정안이 강제성이 아닌, 예약부도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위약금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예약부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제고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아직 큰 틀에서 변화가 있다거나 없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월에 밝힌 것처럼 시간을 갖고 지켜본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예약보증금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약보증금을 받을 수 있게 법으로 명문화해 예약부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찬반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경기도에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예약보증금을 꺼리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예약방문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것”이라며 “예약은 약속인데 이를 지킬 수 있는 고객은 예약보증금 법제화에 대한 저항감이 적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다수 외식업계에서는 예약보증금 법제화에 조심스런 입장이다. 복수의 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소비자 편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예약보증금은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아직 정해진 입장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소비자 역풍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처사로 풀이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예약부도가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예약보증금 법제화 등은 소비자 편익을 무시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며 “자영업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법안 발의는 당장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