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스토리-마화텅①]대학생 '해커'였던 텐센트 창업자는 '인간AI'였다
2018-05-18 10:01
중국 최고기업 만든 47세 중국인 '느린 파이터'의 인간학
# 연출된 겸양인가
"回顾腾讯10年业务的发展,其实就是慢慢地试,有信心,步子才会逐渐大一点" (과거 10년 텐센트사업의 발전을 돌아보면, 사실 천천히 모든 게 진행되었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한발 한발 점진적으로 수행한 것이 크게 된 것입니다.)
"我们都是普通家庭,没有什么特殊的,顶多是房子大一点,也不是说什么太大变化。潮州人习惯喝粥,还是这样" (우리집은 아주 보통 가정입니다. 특별한 게 전혀 없습니다. 그냥 집 방이 좀 커진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차오저우 사람들이 죽을 먹듯 똑같아요.)
# 짝퉁으로 시작해 진짜를 넘어버린 진행형 기적
인구 14억의 나라에서, 그 막강한 시장의 가능성을 활용해 20년 만에 어마어마한 기업을 만들어낸 사람. 짝퉁으로 시작해 진짜를 넘어버린 '진행형의 기적'.
글머리에 인용한 그의 첫 말은, 그가 20년간 벌여온 사업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그의 사업이 발전해온 속도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천천히, 한발 한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얘기다. 속도에 대한 인식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속도를 올라탄 속도의 비밀은 말하지 않았다
그가 설명한 것은 '그의 속도'일 뿐이다. 그가 다른 기업의 진화 속도 위에 올라타서 그것을 넘어버리면서 생겨난 '가속'은 말하지 않았다. 비밀은 여기에 있지만, 그가 '느린 속도'를 강조한 까닭은, 그의 신중한 인성이 큰 성취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억만장자라고 부를 만한 큰 부자가 되었다고 삶의 양상이나 방식이 달라진 바 없다고 말하는 것이, 두번째 말의 핵심이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 된 것은, 일의 성취이지 그것이 그 사이즈의 비율대로 향유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 말이다. 적어도 물질적인 욕망에 있어서는 소박하다는 얘기다.
마화텅의 성장기를 살피는 것은, 그의 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1971년 10월 광둥성 산터우(汕頭)시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친 마천슈(馬陳術)는 공산당 간부로 선전시 항운총공사 사장과 염전항 그룹의 부총경리를 지냈다. 모친 황후이칭(黃慧卿)은 텐센트 창립 때 60%의 지분을 지닐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
# 천문학자를 꿈꾸던 그를 해커로 바꾼, '선전'의 힘
마화텅이 "우리 집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집이었다"라고 말하는 뜻은, 유난한 역경이나 고통을 겪지 않은 유복한 가정이었다는 의미와 통한다. 중국에선 이 같은 관료2세를 관얼다이(官二代)라 부른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중국 사회에서의 유복함이 물론, 현재 사회의 풍족함과는 다른 의미이겠지만, 적어도 그가 급박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할 환경적인 요인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의 '여유'는 그의 사업 철학을 이루는 바탕이다.
마윈 같은 사람과 비교해, 그는 은둔적인 성향의 경영자다. 공식 석상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성장기의 기억이나 기록들도 별로 공개되어 있지 않다. 어린 시절 천문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한때 부친의 임지를 따라 중국 남쪽의 하이난다오(海南島)에도 잠깐 살았다. 1984년 부친이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시에서 일하게 되면서 13세 소년 마화텅도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선전은 당시 개방과 혁신의 기운이 넘치는 신흥도시였다. 그곳은 인터넷 보급도 빨랐다. 새로운 문명에 매료된 마화텅은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청소년이 되었다. 선전중학을 거쳐 선전대학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한 그는, 대학시절 천재 프로그래머로 상당한 이름을 날렸다. 청년 마화텅의 별명은 '해커'였다.
# 그는 철저한 기술자의 바탕을 지녔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선전룬쉰통신발전유한공사라는 통신서비스 제공업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다. 대학시절의 경험과 10년간 IT분야에서의 경력은, 1998년 텐센트를 창업하여 그 이후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중대한 밑거름이었다. 26세의 창업자로 거듭날 무렵, 그가 지니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해커'시절과 소프트엔지니어 시절의 IT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다.
디지털 세상의 폭발적 진화를 만들어낸 힘은, 상상력이며 모험이었다. 하지만 젊은 마화텅에게 상상력과 모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이룩해놓은 상상력과 모험의 결과를 무한히 들여다보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해커의 눈으로 그 기술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이 그에게는 중대하고 의미있는 무기였다.
# 인간AI?
그는 텐센트를 만들던 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어떤 규모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다. 창업 후 6년쯤 지나서 기회가 닿았고, 어떤 상품을 출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만 해도 QQ(메신저) 아이디어가 나오기 전이었고 비즈니스 모델도 모호했다. 그저 고객이 원하는 시스템 개발을 돕겠다는 생각을 했지, 우리가 개발한 상품을 직접 서비스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마화텅은, 우리가 뛰어난 CEO에게 기대하는 것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확고한 비전이나 철학 같은 것 말이다. 그는 다만 고객이 원하는 시스템 개발을 돕겠다는 수준의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이런 고백이 겸허함으로도 들리지만, 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도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텐센트가 출범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갖추고 있었던 것은, 디지털 기술자의 기반뿐이었다. 그리고 1998년의 태동하는 인터넷 생태계에서 그는 모호한 방향을 두리번거리는 모색자였을 뿐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남들과 달랐다 할까. 마화텅은 인터넷 기업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생태계와 혁신의 방식을 자체학습하기 시작한 '인간AI'였을까.<계속>
이상국 아주T&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