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이로운 투자인문학] "누구나 돈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2018-04-26 17:24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부사장
"별은 센티미터까지 움직임을 잴 수 있다. 인간이 주식시장에서 드러내는 광기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지만." 천재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이 말년에 남해회사 주식에 투자했다가 재산을 거의 잃은 후 남긴 말이다.
계량경제학을 만든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대공황을 일주일 앞두고 "내 계산으로 주가는 고원에 올라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대공황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가산을 탕진했다. 살던 집마저 경매로 넘어갔다.
필자도 오랫동안 펀드매니저로 일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천재든, 경제학자든, 수학자든, 점쟁이든 투자할 때는 딱 돈을 잃기 좋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예로 들었던 뉴턴이나 피셔가 대표적이다. 돈을 잃는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행동경제학이 대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
요즘은 펀드시장에서도 주관을 배제하는 상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직관력으로 시장 수익률보다 나은 성과를 노리는 일반적인 주식형펀드는 과거처럼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되레 시장과 비슷한 수익만 내달라는 인덱스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로 돈이 몰리고 있다.
주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시도에서 공통점은 '규칙투자'다. 시스템 트레이딩은 과거 흐름을 분석해 미리 만들어진 규칙대로 매수나 매도 주문을 낸다. 인덱스펀드는 포트폴리오를 시장과 거의 같게 만든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가치투자도 미리 세운 가치측정 규칙으로 투자한다.
◆정답은 원칙을 지키는 가치투자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인덱스펀드와 ETF만 인기를 누린다면 할 일이 줄어든다. 결국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람(펀드매니저)은 거의 없다는 불신이 반영된 결과다. 앞으로 인공지능 펀드까지 가세한다면 펀드매니저는 더욱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그래도 워런 버핏이나 세스 클라만 같은 세계적인 가치투자자는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은 회사가 내놓은 가치투자 펀드도 눈여겨볼 여지가 많다. 2005년 4월 설정 이후 수익률이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ETF보다 100%포인트 이상 높다. 다른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가치투자 펀드도 양호한 성과를 내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가치투자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주관을 배제할 수 있게 미리 규칙을 만들고, 투자대상 가치를 평가하고, 그 가치보다 가격이 많이 싼 종목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만이 시장 수익률을 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가치투자 철학과 규칙을 제대로 세우고 실천하면 인공지능과 경쟁하더라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